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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TV 「언론자유」 누린다(특파원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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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TV 「언론자유」 누린다(특파원리포트)

입력
1991.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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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랑 집권후 독립성 보장으로 「텔레크라시」의 암울한 과거 탈피 【파리=김영환특파원】 『65년 드골에 맞서 대통령 후보가 되기전에 나는 결코 텔레비전에 나오지 못했다. 뉴스는 시대에 순치돼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빨리 망각했다.45%를 득표한 내가 다시 텔레비전에 등장하기까지는 1년반을 기다려야했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집권 10년을 맞아 유력시사 주간지 르포엥이 마련한 소설가 필립·라브로와의 회견에서 프랑스의 TV를 이렇게 회고했다.

오늘날 프랑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은 수없이 많다. 끗발없는 장관도 끗발없는 의원도,즉 시쳇말로 「실세」가 아니더라도 신분상승에 결정적 기능을 하는 텔레비전에 제한없이 등장해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다. 때문에 프랑스 텔리비전을 보면 프랑스의 정치자원이 무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미테랑 대통령은 그러나 자신이 경험한 과거를 지금에선 결코 상상할 수도없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프랑스 TV가 겪은 비운은 얼마전 프랑스의 한 민영텔리비전이 방영한 「거짓말의 진실­역정보 30년」에서 잘드러난다.

56년 알제리반란 평정때 평민이 살해되는 모습은 미국 텔레비전으로만 소개됐으며,61년 알제리계 시민이 파리에서 시위했을 때에도 경찰의 발포로 1백명이 사망했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르몽드를 포함한 모든 언론은 단지 3명이 죽었다고 보도함으로써 진상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가장 능숙하게 이용한 드골 치하에서 뉴스를 지배한 이념은 「무정치」였다. 현 피가로지 논설위원실장으로 당시 정보장관이었던 알렝·페이레피트는 『텔레비전뉴스는 모든 프랑스인의 뉴스가 돼야한다. 그것은 논평없이 사실과 현상 그리고 대화만을 제공하면서 정치성을 배제해야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당시 프랑스 텔레비전 저녁뉴스의 메뉴는 매일 아침 열리는 12개 정부부처의 연락관 회의에서 정해졌다는 것이다. 텔레크라시(텔레비전정치)였다.

그러나 68년 5월 학생혁명이 일어나면서 이같은 악습은 중단됐다. 유러1이나 RTL 등 가장 독립적인 라디오들은 시위사태를 거의 매시간 중계했다.

드골에 이은 퐁피두시대에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역사는 미테랑이 81년 대통령선거의 사회당 후보로 나서면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선거공약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분권화·다원화 될 것이며 권력자나 사적집단 광고주 등의 압력으로부터 기자와 언론의 독립성을 보증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모든 뉴스의 검열이 폐지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테랑 당선 첫해 민간 라디오방송이 허용되고 84년 광고제한이 없어졌다. 82년엔 케이블텔레비전이 허용되고 민간텔레비전으로서 84년 카날플뤼스,85년 라·셍크,86년 M6채널이 신설됐으며 87년 TF1을 민영화했다.

현재 파리에선 케이블로 20여개 채널을 볼 수 있으며 수십개의 FM방송들이 언론 자유를 구가하고 있지만 대역이 단조롭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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