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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아직 걸음마단계”/한국일보창간기념 원로12인의 진단·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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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아직 걸음마단계”/한국일보창간기념 원로12인의 진단·처방

입력
1991.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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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진전 불구 정치인들 구태/옳은법 정립·존법없이는 공염불/경제부문 더뒤져… 소외층 포용시급우리의 민주화는 어디쯤 와있고 앞으로 안고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한국일보사는 창간37주년을 맞아 우리시대의 최대명제인 민주화에 대해 각계의 지도급인사 12인의 고견을 들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민주화가 초보단계라는 진단아래 앞으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편집자주>

○국민 공감대형성 중요

▲고흥문(전 국회부의장)=6·29이후 4년동안 지나치게 안이한 자세로 여론에 영합하는 조치들만 펴온것이 민주화를 후퇴시키는 듯한 상황까지 초래했다. 민주화가 선언이나 구호만으로 단시일내에 이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국민과의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화를 위한 구체적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아 국민의 신뢰를 얻지못하고 있고 그결과 기대감을 갖고있는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등 갈등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이 대권에만 관심을 갖고 세세한 대국민약속을 손바닥 뒤집듯하는한 민주화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나의의견」에만 몰입

▲김갑순(전 YWCA 연합회장)=어지러웠던 지난 40년과 비교할때 우리는 무척 말을 많이 할 수 있게됐다고 할수 있다.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진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를 진정한 발전이라고 말할수는 없을듯 싶다.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우리는 아직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기는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나의의견」만 내놓는데 열중한다. 말이 너무 많아졌다.

정치인이나 교육가나 부모가 모두 교육하는 마음으로 책임질 수 있는 말을하고 이를 옳은 행동으로 실천해 나갈때 진정한 민주화가 가능할 것이다.

○국민학교 5학년 수준

▲김은호(전 대한변협 회장)=민주화수준을 학교생활에 비교해 대학생을 완전한 수준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아직 국민학교 5∼6년에 머물러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화 미숙은 정부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주권을 가진 국민이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해야한다. 요즘은 폭력과 실력행사로 민주화를 하려는 경향이 있어보인다. 민주화는 「법치주의」로 풀이돼야 한다. 민주국가라면 법을 존중하고 그 질서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적 측면에서 옳은 법을 정립해야하고 국민들은 법의식을 확립해야 한다. 법을 외면한채 행동한다면 민주주의의 정립은 요원한 것이 될 것이다.

○민주화 생활화 안돼

▲김정한(민족문화작가회의 고문)=한마디로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6·29이후 약속대로 민주화가 잘 될줄 알았다.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고 국민들도 민주화가 생활화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6공정부는 출범때부터 약속한 금융실명제 등에 대해 『지금은 그럴때가 아니다』라는 등 일방적인 약속파기를 하고 있다.

또 곳곳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군사문화적요소와 위정자들의 편의주의 및 적당주의 그리고 무사안일주의는 일반국민의 신뢰를 얻지못하고 있으며 학원사태의 한 원인이 되고있다. 국민의 책임도 있으나 정부와 가진자의 일대각성이 시급하다.

○각자 성실성이 열쇠

▲박경리(소설가)=우리는 과거 독재시대에 숨도 못쉬던 억압에서는 풀려났다. 제도적인 면에서 민주화는 분명 나아졌다고 할수있다.

그러나 「눌리던 시대」의 괴로움 만큼이나 이 시대는 우리의 의식을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이기주의라는 병에 만연돼있다.

위정자와 국민,집단과 개인,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억압을 넘어서자 상호불신의 늪에 빠져버렸다. 어느때보다도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지식인들 역시 하찮은 목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많다.

못하나 박는 노동자에서 최고위 통치자까지 제각각의 성실과 정직만이 해결의 열쇠라고 믿는다.

○폭력은 단호히 거부

▲박홍(서강대 총장)=우리는 지금 민주화의 대변혁기에 있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접점에 서있다고 볼수있다. 많은 사람들의 민주화 갈망을 이용해 폭력혁명을 계획하는 그룹을 경계해야 한다. 폭력은 누가 어떤 형태로 사용하든 참다운 민주화의 적이다. 방법과 목적이 전도돼서는 안된다. 우리는 민주화의 기준이 되는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폭력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거부해야 한다.

몇년전에 비해 우리의 민주화는 상당히 진전됐다. 현재의 갈등은 향후 민주화의 기로가 될수 있는 것이다. 발효와 썩는것이 비슷하면서 다르듯 우리도 민주절차와 선거 등 목적에 맞는 참된 방법을 찾아가야한다.

○도덕·문화개혁 시급

▲서영훈(전 흥사단 이사장)=분단과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소외계층이 생성됐다. 또한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사회구조가 바뀌었으나 의식이 이를 쫓아가지 못했다. 이 두가지 요인으로 우리사회는 갈등을 겪고 있으며 여기에 민주주의의 어려움이 있다.

기득권층이 소외 계층의 입장을 이해하고 경제·사회정의가 실현되어야 하며 경제성장과 정신문화의 균형이 필요하다. 민주국가는 법치국가이며 문란해진 준법질서가 회복되어야 한다. 경제·사회정의실현과 도덕규범을 포함한 문화개혁을 합헌적 테두리에서 이룰 수 있도록 해야한다.

○지도자 민주신념 필요

▲이만섭(전 국민당 총재)=국민적 에너지 결집이 이뤄지지 않아 정치분야의 경우 다소의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전반적 상황은 여전히 혼돈상태에 있으며 아직도 갈길이 요원하다. 6공은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지켜야할 권위와 지도력마저 상실해 버렸다. 때늦게 강경정책으로 돌아서자 공안통치가 되고 말았다.

참다운 민주화의 실현은 정치적·제도적인 면뿐 아니라 경제적 분야의 민주화를 이룩하는데서만 가능하다.

민주화의 완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의 지도자들이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민주화과정 잘못돼

▲이재형(전 국회의장)=겉으로는 민주화가 더러 이뤄진것 같지만 그 과정은 매우 잘못돼있다. 민주화 하겠다는 사람들도 그렇고 하자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힘이나 폭력으로 왈칵 달려드는 것은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화라는게 얼마나 따분하고 오래걸리며 한없이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모두들 망각하고 있다.

「하늘천따지」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공산주의 이론은 폭력혁명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시작에서 부터 끝까지 폭력이 배제되어야만 한다. 폭력이나 힘을 쓰겠다는 사고방식자체를 완벽하게 없애는게 급선무다.

○학생시위 달라져야

▲이한빈(전 부총리)=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인 지방자치를 목전에 두고있다. 또한 2∼3년전만 해도 엄존했던 쿠데타에 대한 기우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게됐다. 그만큼 시민세력이 형성됐다는 증거이며 민주주의가 상당히 정착됐다는 의미이다. 다만 현재의 문제는 4·19로 시작된 시위문화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변화가 사회저류를 살피지 못하는 지도층의 대응방식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학생시위는 민주주의가 상당히 진척된만큼 달라져야 한다.

정부 및 정치지도자들도 높아진 시민의식 등 상황변화를 깨닫지 못한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서둘러서는 안된다.

▲현승종(한림대 총장)=우리의 민주화는 이제 겨우 기본토양이 마련됐다. 막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 상태지만 노력만하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된 상태이다.

따라서 아직은 여러부분에서 미진한 점이 많다. 우선 정치분야는 아직도 당리당략이나 집단 이기주의에 젖어있는 측면이 크다. 경제계도 권위주의 아래서 만연됐던 정권비호타성의 잘못된 체질을 벗지못하고 있으며 사회전반적으로 욕망표출 현상이 드세다.

민주화란 구호로만으로 얻어지는게 아니다. 「내주변에는 비민주적인 요소가 없는가」라는 기초적인 성찰과 노력이 쌓여가야하며 이러한 문화적 축적이 민주주의를 포용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서둘러서는 안된다.

○정당민주주의 과제

▲홍남순(변호사)=6공정부가 민준화의지를 가지고 이를 진행시키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군사문화와 권위주의의 청산은 완성되지못한 상태이고 투기 등으로인한 경제부분의 계층간 격차 등 비민주적요소가 잔존하고 있다.

특히 여야정당의 경우 당내 민주주의의 실현이 과제이다. 국민들도 자기반성과 자기비판능력을 지녀야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줄 알고 포기의 용기도 가질줄 알아야한다. 민주화는 현명한 국민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자각해 각계의 지도층을 채찍질할 수 있어야 한다.<이상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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