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총리 폭행」으로 반전된 여론의 힘을 얻어 정국은 광역선거 국면으로 점차 접어들고 있다. 숨가쁜 한 고비가 넘어간 셈이다. 그러나 누구도 정국의 장기전망에는 낙관적이지 못하다.언제 어디서 또 무슨일이 터져 정국이 곤두박질칠지 알수가 없는 것이다. 사건의 성격에 따라 정국흐름의 줄기가 손바닥 뒤집히듯 반전에 반전을 되풀이 해온 악순환이 5공이래 우리 정치풍토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날때마다 어느쪽에 유·불리한 호·악재냐에 따라 여야가 또는 정부와 재야·운동권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소동은 선후진국 통틀어서 세계에 유례가 없는 현상이다. 5공때는 독재체제여서 그랬었다치더라도 민주화가 진행중인 지금은 왜 그러한가?
기본적으로 볼때 그것은 우리사회의 안정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에 그럴것이라는 생각이다. 중심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기 때문에 웬만한 충격에도 균형이 깨져 사회전체가 뒤뚱거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나라의 중심을 잡아줄 국가지도력의 과제를 우선 떠올리게 된다. 6공은 역사적으로 독재정치에서 민주정치로,군사문화에서 문민우위로 이행되는 길목에 있는 과도기적 성격의 정권이라 할수 있다. 따라서 국가운영에 있어 과도기의 한계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6공은 과도기를 깊게 인식하고 시작한것 같지가 않다.
노태우 대통령이 초기에 보인 자유방임정책은 시의적절했다고 볼수 있다. 압력과 간섭에 넌더리가 나있던 국민들에게 그것은 숨통이 트이는 해방감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1년 남짓 지나 「물대통령」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게 되었을때 국민들은 6공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민주화 욕구를 수렴해가면 된다는 수세적 방향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과도기의 특수상황과 변수에 대응하는 효율성있는 관리방책은 마련하고 있지 않은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한 느낌은 공안통치 시비때도 비슷했다.
공안정국→범죄와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공권력발동이 현저한 효과와 성과를 올렸을때 다음단계를 준비했어야 했다. 경찰력이나 검찰력의 집중적인 활용은 대증요법이므로 짧을수록 좋다는 점에서 보다 차원이 높은 정책으로 전환시켜가거나,아니면 강경일변도의 공권력 운용에 충분하게 유연성을 부여했어야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비위주에서 갑자기 공세로 전환할때 필요한 준비나 후속포석이 없이 기초공권력이 일시적으로 구축한 강성기조위에서 국정수행을 강하게 밀어붙인 노내각은 모래위에 지은 집처럼 충격에 약한 허점을 안고 있었다고 볼수있는 것이다.
과도기관리의 요체는 구성원간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퇴임이후나 후계구도를 의식했기 때문인지 6공은 오히려 갈등을 양산함으로써 불필요한 자체 에너지를 낭비하고 국민의 신뢰를 계속 잃어가는 결과를 빚었다. TK인사 일변도의 인사,월계수회 등의 전횡,친인척의 행세,무리한 3당통합과 끊임없는 내각제파문,민자당의 내분과 권력투쟁 등이 과도기 관리를 더욱 어렵게 했다.
6공은 과도기의 최대걸림돌인 재야·운동권에 대한 대응도 안이했다. 5공때의 흑백논리가 그대로 유지되었고 상황변화에 따르는 대화나 설득 등 채널을 가져보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것같아 보인다. 6·29선언 이후 재야세가 급격히 약화돼간 상황을 과소평가한 결과는 치사정국에서 보듯 큰 위기로 재현됐던 것이다.
과도기는 여건과 한계상 할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이 분명한 경우라 할수 있다. 6공은 금융실명제나 토지공개념 등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섣불리 공약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흑자 3년의 외화관리에서 실패,부동산파동과 증시파동을 자초했던 것이며 선거 등 단기목적에 따라 실현성없는 대형경제·개발 공약 등을 마구남발,불신을 심화시켰다.
6공이 이번 「재상폭행」에서 안정희구의 중산층이 역시 사회안정의 중심세력임을 재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라 할만하다. 실정 등 자충수가 없는한 정권퇴진이나 체제전복을 불용하는 중심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과도기의 안전판이 될수가 있는 것이다.
6공이 강하게 나갔을때 시국의 긴장이 오고 난제가 발생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6공은 인내와 기다림의 정치에 강하다. 과도기를 감안한 짜임새있는 정국운용책을 마련해 남은 임기 「1년8개월」을 잘 마무리해갈수 있기를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