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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청와대서“91년가입”지시/북한“유엔가입”까지 외교노력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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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청와대서“91년가입”지시/북한“유엔가입”까지 외교노력뒷얘기

입력
1991.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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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파견 각국 설득전/「제주회담」서 확신가져/마지막 「북·중국 장벽」 이붕 방북때 무너져한국의 유엔가입은 신질서태동의 국제조류,한국위상의 성장이라는 국제정세 변화의 필연적 결과였다.

그러나 「건국후 43년만」의 유엔입성을 위해 막바지 외교노력이 없었던들 이 「과실」을 획득할수 없었다. 이같은 과실을 얻어내기까지 외교총력전을 벌여온 막후의 뒷얘기들도 적지않다.

○…정부가 금년을 유엔가입의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총력외교전으로 전개키로 결정한때는 지난해 12월20일이었다는게 관계자들의 얘기.

당시는 유엔가입 추진이 남북대화 분위기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내에도 이견이 있었으나,이날의 「청와대 대책회의」를 기점으로 『유엔가입이 남북관계 돌파구의 충격요법』이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는 것.

이날 회의에서 외무부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국제분위기,북한·중국의 태도,향후전략을 보고했는데,보고내용의 주조는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성공한다』는 것이었다.

외무부 보고를 들은 노대통령은 탁자위에 놓인 보고서겉봉 상단에 이례적으로 친필로 『명년(91년)을 목표로 착실히 준비하라』고 지시,「GO」 사인을 했다는 것.

외무부는 노대통령의 친필지시가 쓰인 보고서를 유엔 과 캐비닛에 「기념물」로 보관하고 있다.

정부 입장이 확고부동해지자,그동안 『한국정부가 유엔문제를 대북카드로 쓰는 것 아니냐』고 반신반의하던 우방국들도 『돕겠다』는 사인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정부가 구사한 전략은 「포위압박외교」로 명명되고 있다. 대사관 등 공식채널을 통한 협조요청,국내를 방문하는 각국 외교거물들과 교감을 나누는 분위기 조성작업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이중 특히 총리·외무장관을 지냈던 원로들이 세계각국에서 설득작업을 벌였던 「특사외교」가 큰몫을 했음은 외교가의 중평.

특사파견형식을 놓고 「밀사식」과 「전시효과식」 등 2가지 방법이 논의됐는데 『정공법이 효과가 크다』는 의견이 우세해 동시다발적인 파견방식으로 낙착됐다. 5월중 파견된 특사는 중동지역의 강영훈 전 총리·최광수 전 외무장관,아프리카의 정원식총리,남미의 이승윤 전 부총리,오세아니아의 이원경 전 외무장관,서 구라파의 박동진 전 외무장관,인도·동구라파의 노신영 전 총리 그리고 외무부 본부대사인 한우석·김창훈대사 등이었다.

이중 정특사는 아프리카 순방중 총리지명을 받았고 이전부총리는 순방도중 북한의 유엔가입 신청결정을 알았다.

북한과 가까운 이란의 최고위급인사는 특사 방문을 받고 『한국이 이런정도로 진지한줄 몰랐다』며 「지지」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것.

○…우방국의 협력 또한 간과할수 없는 부분. 관계자들은 북한 태도변화를 가속화시킨 큰 동인으로 지난해 유엔총회에서의 부시 미 대통령 연설과 노­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제주회담을 든다.

부시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중 한국의 유엔가입 입장을 지지한뒤 로비에서 각국 대사접견중 박길연 북한대사에게 『내말 잘들었으면 그대로 전달해 달라』고까지 얘기했다.

또 제주회담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우리측 입장을 지지했을때 우방외교관들은 『중소가 이제껏 안보리에서 반대표결을 한적이 없다. 중국도 최소한 기권은 할것』이라고 대유엔외교의 성공을 확신시켜주었다.

○…유엔으로 가는 길의 걸림돌은 역시 북한과 중국이었음은 공지의 사실. 지난해 고위급회담에서 공식 제의한 것 외에도 유엔에서 현홍주 당시 유엔대사(현 주미대사)와 박북한대사간의 7차례 비밀접촉이 있었다. 당시 박대사가 우리측의 접촉제의에 여러차례 응한것은 행여 우리정부가 전격적으로 유엔가입 신청을 낼까봐 정보탐색 차원에서 접촉한 성격도 컸다는게 중론.

금년들어서 정식접촉은 북한의 전격발표 하루전인 지난 27일 뉴욕내 한 호텔에서 있은 노창희­박길연간의 접촉 한번뿐이었다.

박대사는 이미 자신들의 정책변화를 알고 있었지만 내색치 않았고,대신 과거와는 달리 진지하고 「공손한」 자세를 보였다는 후문.

중국에 대해선 직·간접 채널을 활용했는데 우방국을 통한 대중설득을 부탁하는 방식을 원용,금년에 방한한 각국 외교인사들은 공히 우리측의 「유엔설득」을 받았는데,이들중 알라타스 인도네시아 외상,미켈리스 이태리외상 등이 두드러진 기여를 했다는게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알라타스 외상은 지난 4월1일 서울서 열린 ESCAP 총회에서 그동안의 유보적 자세에서 「적극지지」로 선회해 대세를 우리쪽에 얹어주었고 미켈리스 외상은 지난 22일 방한전 중국에 들러 강도높게 『상식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직접방식으로는 ESCAP 총회때 이상옥 외무장관이 유화추 중국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설득한 것. 유부부장은 원론적 입장을 표명했지만,그후 중국을 다녀온 키미트 미 국무성차관이 『이장관의 메시지가 잘 전달됐다』며 중국도 이미 대세를 따르기로 했음을 통보.

얼마전 이붕 중국총리가 북한방문시 『한국입장을 반대하기 어렵다』고 말한것이 북한에는 「최후통첩」이었다는 것.<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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