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이솝우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주인이 하인에게 옆에 있는 공중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많은지를 알아보게 했는데 심부름을 다녀온 하인의 대답이 지금 목욕탕에 사람이 한명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말을 듣고 주인이 목욕탕에 갔는데 목욕탕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화가 난 주인이 하인을 야단치는데 하인의 대답인 즉,목욕탕앞에 있는 큰 돌에 어린아이들이 걸려 넘어져서 우는데 모든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더니 드디어 한사람이 나서서 그 돌을 치우고 어린아이들을 보살펴주더라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은 그 한사람만을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즉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사람다운 사람은 한명밖에 없었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우스운 논리가 어쩌면 요사이 우리 경제에서 은행들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즉 우리 주위에 은행은 많이 있지만 진실로 은행의 역할을 하는 은행은 없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은행의 기본적인 역할이라면 무엇보다도 경제내에서 금융자산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심사역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은행은 단기자금의 주된 공급원으로서 기업들을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는 은행들이 전체 기업들 주식의 22%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기업들의 재정적 위기시에는 관리인력을 파견하여 도와주고 더 나아가서는 그 기업의 경영전략을 수립하는데까지 관여하는 등 경제내에서 자금의 합리적인 배분과 관련하여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은행들을 한번 돌이켜 보자. 그동안 우리 경제에서 은행들처럼 철저하게 규제되고 보호된 산업도 없을 것이다. 우리 은행들은 거의 완벽한 진입장벽속에서,정부가 정해준 이자율로 예금을 받아 자금을 조성하고 또 그 자금을 정부가 지시하는 대로 대출하며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역시 정부가 해결해주는 식으로 성장해왔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일반 국민들은 저축을 하려고 해도 정부에서 허가한 몇몇 종류의 예금제도에 돈을 맡길 수 밖에 별다른 선택권을 가질수 없었으며,어느 은행과 거래를 하여도 똑같은 서비스여서 그 은행이 그 은행인격이었다. 거기에다 일반 예치된 자금은 일반 국민이나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이는 우리나라가 만성적인 자본부족 경제여서 돈을 쓰려는 요구는 많은데 비해 빌려줄 돈은 적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꺾기」나 대출수수료와 같은 음성적인 대출관행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정부의 지나친 보호와 규제로 인해 우리 은행들은 그동안 자금 합리적 배분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그 결과 은행다운 은행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한 예로 지난해 연말에 정부는 증권시장을 부양하기 위하여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2조원 이상을 동원하여 투자신탁회사에 대출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증권시장이 계속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여 투자신탁회사들이 2조원의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정부는 은행이 대출해준 2조원에 대하여 대출이자를 유보하여 주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은행은 돈을 꾸어주고서 이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되어 버렸고 이는 실질적으로 은행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외에도 산업합리화라는 명목하에 부실기업을 정리하면서 정부가 마땅히 그 기업을 도산시키지 않고 은행대출금에 대하여 10년거치 10년상환이 특혜를 주는 결정을 하였다. 이러한 모든 예들은 한마디로 우리 은행들이 그동안 정부의 하수인으로서 정부의 규제와 지시에 묶여 그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덧 우리경제도 상당한 규모로 성장하였고 더욱이 경제개방에 따라 국내금융시장에 외국은행들의 진출이 허용되는 시점에 이르렀음을 감안한다면 이제는 우리 은행의 위상을 바로 잡아야할 때라고 생각된다. 즉 현재와 같이 은행의 수신제도는 획일적으로 묶어두고,대출은 정부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게하고,심지어는 은행의 임원인사까지도 일일이 간섭하는 상황하에서는 우리 은행들은 앞으로 국제적으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 조차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은행들이 국내외에서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른나라 은행들과 동등한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은행에 대한 규제와 지도는 국제적으로 허용되는 관행의 범위로 축소시키고 은행경영의 자율화를 대폭 확대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오늘날과 같이 은행의 자율적 의사는 무시한채 정부의 입김에 의해 은행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자금의 배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하여 시중에는 자금이 경색되고,기업들이 자금난으로 아우성치는데 은행들은 「꺾기」로 극성을 부리고,국민들에게는 대출금리이외에 브로커수수료의 부담이 생기게 되어 한마디로 우리경제엔 「은행」은 없다라는 결론이 내려지게 된다.
요사이 우리 경제에서도 금융시장의 개방에 대비하여 여러가지 금융자율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경제에 참다운 은행은 없는 것인지,없다면 우리 정도의 경제규모에서 참다운 은행이 없어도 되는 것인지 정책당국자들에게 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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