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전환 모색기/국민들도 새인식 필요”/“이대론 안된다” 뜻 못편 아쉬움 표현『변혁기에 내각을 맡은 책임자로서 일끝난뒤인 횡혼에야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되기보다는 새벽부터 활개치는 「여명의 새」가 되고자했습니다』
취임 1백48일만에 퇴임하는 노재봉 전 총리는 24일 상오 재경 3급 이상 공직자가 참석한 이임식에서 독일철학자 헤겔의 경구를 인용,자신의 재임기간을 이같이 함축적으로 회고했다. 노전총리의 이임사에는 절제된 표현이긴 하지만 시국상황에 대한 소신이 확실히 나타나 있었고,「뜻을 펴보지 못한」 아쉬움과 착잡함이 곳곳에서 묻어나는듯 했다.
노전총리는 우선 『사심없이 최선을 다했으나 국민여망과 기대에 부응치못해 송구스런 마음 금할길 없다』면서 『물러가는 사람은 말이 없다고 하나 6공 창건에 참여한 한사람으로서 역사적 전환기에 일할 기회를 가진것은 영광이었다』고 퇴임의 변을 밝혔다.
노전총리는 『우리가 지금 고비만 넘기면 21세기엔 확실히 달라진 한국의 위상과 모습을 보여줄수 있을 것』이라면서 『높은 인품의 정원식 총리를 중심으로 전 공무원이 합심,이 나라 행정을 굳건히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임사 말미에 노전총리는 『늘 강조해오던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는 추호의 변함이 없다』고 「뼈있는」 말을 던진뒤 『어디에 있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
이임식에 앞서 노전총리는 집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간의 소회를 담담히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재임기간을 회고하면.
『다사다난했던 시기에 전력을 다한다는 일념으로 임해왔기 때문에 회고조차 할 여유가 없다』
퇴임하게된 정치상황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물러나는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공직자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국가라는 단위를 놓고 보면 이렇게 좋은 환경을 가진적이 없다.이 기회를 잘 포착해 나라를 한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건 완전히 상반된 이해와 갈등을 접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지만 공직자들은 이럴수록 중심을 잃지말아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해온 공직자들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시대흐름을 진단하면.
『지금은 대전환을 모색하는 시점이다. 이 시점에서 누가 정부를 맡고 정권을 잡더라도 피할수 없는 문제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틀과 산업사회질서를 연결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산업화에 필요한 전문화교육 및 행정개혁은 상수적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어떤 과제도 국민과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해결될수 없으며,국민의 비중을 위정자는 물론 국민 스스로도 새롭게 인식해나가야 한다』
취임시와 퇴임시의 심경을 비교하면.
『총리직은 개인을 묻어야 하는 자리다. 개인차원이 배제되는 자리의 진퇴에서 감회나 소회를 사적으로 밝힐 필요가 없다고 본다』
퇴임이 정치공세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오늘부터는 정치학자로 돌아가는데 정치학도는 일이 다 지난뒤 판단한다. 그러니 아직은 말을 아끼고 싶다』
밖에 있을때와 정부에 들어와서 본 언론이 차이가 있는지.
『한 사물을 보는데 만인에 만인의 시각이 있지않겠는가』
이 대목에서 노전총리는 『여러분이 생각해보면 미루어 짐작할수 있지않느냐』고 말해 다소간 「섭섭함」을 느끼는듯 했다.
그렇지만 『언론이 퇴진문제를 끈질기게 거론해 불편하지 않았느냐』는 추가질문에 노전총리는 『민주주의의 요체는 언론 아니냐』고 이내 가볍게 대응하는 여유를 보였다.
청와대측으로부터 퇴임후 도와달라는 얘기가 있었는가.
『그런 얘기를 할 상황이 아니다』
대통령과 후임자를 논의한 적은.
『사의만 표명했지 그 이상의 논의는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특별히 생각해본 일은 없다. 다만 정부에 들어오기전에도 했고 또 여기서도 틈날때마다 했던 일,바로 그것을 하기위해 되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노전총리는 학문세계로 복귀하겠다는 뜻을 이렇게 표현한뒤 공인에서 사인으로 돌아가지만 여러분들과 가끔 만날 기회가 없진않겠지…』라며 20여분간의 고별간담회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노전총리는 기자간담회후 총리실 직원들과의 이임식을 가진데 이어 재경 3급 이상 간부들과의 이임식을 끝으로 정부종합청사를 뒤로했다. 그는 『며칠 쉬시다 이사하시라』는 측근들의 얘기에도 불구하고 퇴임당일 총리공관에서 방배동사저로 이사했으며,귀로에는 손수 승용차를 몰고가는 「보통사람」의 길을 택했다.<이영성기자>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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