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산자이 사망후 정계입문/독직추문관련 89년 총리사임라지브·간디 전 인도 총리가 자신에게 씌워진 운명의 굴레를 벗지못한채 끝내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동생 산자이의 사고사로 정치에 입문한뒤 모친 인디라·간디의 암살로 총리직을 승계했던 라지브·간디는 이번 총선을 통해 총리직을 재탈환함으로써 가문의 그늘에서 벗어난 「홀로서기」를 기대했었다.
그만큼 이번 선거에 쏟아부었던 간디의 노력은 지대했다. 지난달 주변의 강권에 떼밀려 얼떨결에 총리까지 오른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지난 85년부터 89년까지의 총리재임 기간동안 쌓아온 경험과 자신의 장단점을 되살려 강국 인도건설을 위한 강력한 정부실현의 포부를 꿈꾸어왔다.
84년 어머니의 피살은 그를 총리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치때를 덜탄」 간디는 이때부터 아수라장의 정치판에 보다 깊숙히 빠져들게 됐다.
당시 40세로 인도사상 최연소 총리가된 간디는 85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여세를 몰아 매너리즘의 깊은 잠에 빠져든 인도사회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첫번째 목표는 권위적 관료주의와 행정부내 부정·부패 일소였다. 패기와 「미스터크린」이라 부르는 국민적성원을 업고 힘찬 걸음을 내디딘 간디였지만 곧 정치적 미숙함을 드러냈다.
그의 부정·부패일소책은 지난 87년 무기구매와 관련된 보프르스독직 추문에 자신이 연루되면서 총리직 사임이라는 정치적 좌절로 이어졌다.
간디가 추진했던 또하나의 야심작은 경제체제에서 사회주의 잔재를 청산하고 현대적 자본주의체제를 정착시키는 작업이었다. 서구지향적이던 그의 경제드라이브는 계층간의 격차와 계층간의 위화감만을 심화시킨채 무위로 끝났다.
그의 정적과 야당들은 이를 빌미삼아 간디가 스포츠카나 몰며 서구적 생활패턴에 젖어있다고 몰아세웠다. 심지어 지난 68년 결혼한 이탈리아 출신 소니아여사와 집안에서 영어로 대화한다는 점까지도 들춰냈다.
국민과의 괴리가 자신의 최대약점임을 간파한 간디는 이번 선거유세를 통해 국민과의 간격을 좁히기로 하고 그들속에 파고들었다. 그 결과로 간디는 국민가운데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됐다.<윤석민기자>윤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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