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실으며 라이터불 밝혀 애도/교내 박노해씨 메시지 대자보/아버지,부총장에 “그동안 죄송” 사과○…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와 문익환목사 등 대책회의관계자 10여명은 18일 상오9시45분께 연세대 본관으로 김찬국 부총장을 찾아가 『그동안 학교측에 물적·정신적 피해를 끼친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연세대에 머물며 사용해온 전기·수도료 등은 명지대측과 협의,추후 보상하겠다』고 약속.
○…상오11시5분께 영결예배를 마친 운구행령은 선두차 뒤에 「구국의 횃불」이라고 쓴 장례위명의의 대형만장과 태극기,강군 영정,관순으로 발인,신촌로터리까지 1.5㎞ 구간을 멈춤없이 직행.
지난 14일 영결식때보다 차분한 분위기속에 영안실을 출발한 운구행렬이 세브란스 정문앞에 도착했을때 굴다리위에서 30대여자 1명이 분신투신하자 잠시 술렁.
○…범국민대책회의 투쟁본부 사무실로 23일째 사용된 연세대 학생회관 3층 총학생회실과 동아리연합회사무실 등에는 이날 상오 일찍부터 대책회의 관계자들이 각종 서류뭉치와 이불 옷가지 등을 싸면서 떠날 채비.
○…신촌로터리에는 이날도 민중 정부수립 등을 주장하는 사노맹의 벽보와 스티커가 무수히 나붙어 당국이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연세대 교내에는 구속중인 사노맹 중앙위원 박노해씨의 옥중 메시지를 담은 대자보가 나붙기도
박씨는 17일 서울 구치소에서 면회온 가족을 통해 구술한 메시지에서 『지금은 노태우 정권과 민중간의 공공연한 내전상황』이라며 『우리의 투쟁목표는 노재봉 내각의 사퇴가 아니라 노정권 타도와 임시민주정부 수립』이라고 주장.
○…경찰은 상오9시께부터 서울역으로 향하는 이대입구 로터리 부근 6차선 도로에 쇠줄로 묶은 바리케이드 1백50여개와 5m길이의 철제빔 12개를 설치하고 차량을 전면통제.
경찰은 이날 6공들어 최대 규모의 경찰병력을 동원,강군 장례와 5·18관련 행사 등에 대처했으나 집회 및 시위가 동시다발로 열려 인력이 크게 달려 고심.
○…연세대앞에서 분신자살한 이정순씨(39·여)의 신원이 처음 연세대 영문과 2년 신모양(20)으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한동안 혼란.
신원혼선은 철교밑을 지나가던 신양이 분신장면을 목격하고 놀라 가방을 떨어뜨린채 떠났고 동료들과 약속한 장소에도 나타나지 않아 빚어진것.
한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 신모씨(56·H관광여행사 대표)와 동료들은 울면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왔다 사실과 다르자 안도의 한숨.
○…대책회의는 하오4시50분께 시위가 격렬해지자 유족측과 협의 ,노제장소를 공덕동 4거리로 변경하기로 결정.
대책회의 이수호 집행위원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가두방송을 통해 『분통한 일이지만 더이상의 희생을 막기위해 유족과 협의,공덕동로터리에서 노제를 치르기로 했다』며 폭력시위 자제를 호소한뒤 김원환 시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장소변경을 통고.
○…노제가 끝난 하오8시15분께 강군의 관을 영구차에 싣는동안 참석자들은 모두 라이터를 켜 주위를 밝히며 애도.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는 연단으로 올라가 『이땅에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워나가겠다』고 즉석 연설.
운구행렬은 마포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로 빠져나갈 예정이었으나 하오7시 여의도에서 출발하는 부처님오신날 봉축행렬때문에 용마루고개용산으로 코스를 변경.
행렬은 한강대교를 거쳐 강군 모교인 대치동 휘문고에 잠시 머문뒤 밤10시께 고속도로를 통해 광주로 직행.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