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계기 자세변화/“타국 억제수단 못된다”/리비아·이집트등 보유국에 압력클듯미국이 국제화학무기 금지협정 체결후 10년내에 자국보유 화학무기를 무조건 전량 폐기하겠다는 부시 미대통령의 13일 선언은 그 선전적인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온 제네바 군축회담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할것으로 보인다.
부시대통령이 화학무기 금지협정의 체결을 88년 선거공약의 하나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국제적 협정체결이 지연돼온 까닭은 화학무기를 억제수단으로 존속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고집때문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시 미대통령은 지난 8년9월 유엔연설을 통해 국제화학무기 금지 협정의 체결을 전제로 협정체결이후 8년동안 미국이 보유한 화학무기의 98%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이어 90년 6월에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미소가 2년부터 보유한 화학무기를 폐기하기 시작,2002년에는 각각 5천톤(미국입장에서는 현보유량의 20%)씩만을 보유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화학무기는 미국이 유일하게 이니셔티브를 취한 군축분야이다. 그러나 39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제네바군축회담에서 그동안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것은 바로 미국이 내세운 두가지 전제조건 때문이다.
미국은 ▲선제공격을 받을경우 보복할 권리와 ▲제네바 군축회담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화학무기 보유국들 모두가 협정에 서명할때 까지는 소량이나마 화학무기를 계속 보유하겠다는 두가지 조건을 줄곧 고집해 왔다. 89년 유엔연설에서 「2% 보유」 단서조항과 미소정상회담에서 각각 5천톤씩을 계속해서 보유키로 한것도 「스페어타이어」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미국의 「예방논리」 때문이다.
부시의 이번 선언은 이 두가지 요구조건을 철회한다는 뜻이다.
부시 대통령이 화학무기 분야에서 또 다시 전진적인 자세를 취하게된 것은 냉전종식이후 미소간의 군사적 경쟁관계가 점차 약화되어가고 있다는 것도 한 이유이지만 걸프전에서의 경험이 무엇보다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량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란과의 전쟁이나 쿠르드반군과의 내전 과정에서 이미 화학무기를 사용한바 있는 이라크가 패전에 이르기까지 끝내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국으로 하여금 화학무기를 더이상 억제수단으로 보유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한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이 대폭적으로 화학무기를 감축하겠다고 하면서도 소량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겠다고 한 것은 소련을 염두에 두었다기 보다는 이라크와 같은 지역강국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라크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화학무기를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빈국의 핵무기」라는 화학무기는 핵무기처럼 미국 등 초강대국이 결부된 재래전에서는 사용할수 없다는 사실이 이번 걸프전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미국은 오히려 다른화학무기 보유국들이 협정체결을 미루는 구실만을 주는 「2% 보유」 단서조항을 더 이상 고집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 것이라고 볼수 있다.
미국의 화학무기 일방 포기선언은 리비아,시리아,이집트 등 화학무기 보유국가들에도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14일 개막되는 제네바 군축회담에 미국의 입장을 공식전달하는 한편 39개 협상 참가국들에 아직 해소못한 이견들을 연내까지로 조정,내년 5월까지 화학무기 금지협정을 체결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부시대통령은 협정이행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새롭고 효과적인」 절차를 마련해 협정이행을 거부하는 나라들에 실질적인 제재를 가하는 방안까지 제시하겠다고 말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1차대전 당시 등장한 화학무기는 미소를 제외한 선진 강대국들이 이미 「퇴역」시킨 무기다. 영국은 50년대에 화학무기를 폐기했으며 프랑스는 화학무기 보유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핵강국인 미소가 그동안 화학무기를 보유해온것은 지역분쟁에서 사용할것을 대비해서였다. 그러나 미소냉전의 해소는 두 초강대국으로 하여금 화학무기를 보유할 필요성을 감소시켰고 이러한 배경에서 강대국의 일방 폐기 움직임이 가능했던 것이다.
미소 강국의 일방적 폐기선언이 지역강국의 폐기유도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걸프전을 계기로 화학무기는 「실전무기」 보다는 「정치적 무기」로 변화됐다는 사실이다.<유동희기자>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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