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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치를 장례/원일희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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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치를 장례/원일희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1.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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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군 장례는 두번 치르게됐다. 사망 19일째 되는 날에야 겨우 발인과 영결식을 마친 강군의 시신은 온종일 노제공방 끝에 결국 연세대로 돌아가고 말았다.강군 장례는 명지대에서 발인·영결식을 마친 직후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낮12시30분으로 예정된 신촌로터리에서의 6인 추모제를 위해 떠난 운구행렬은 연희동 입구에서부터 최루탄 세례를 퍼붓는 경찰에 밀려 하오5시께 도착할수 있었다.

간략하게 추모제를 마친 대책회의는 하오6시30분께 시청앞 노제를 위해 행진을 시작했고 대형 스피커에서는 『경찰이 저지하더라도 시청앞 노제를 거쳐 청와대까지가 국민의 의지를 보이자』는 목소리가 계속터져 나왔다.

이때 이대입구는 경찰이 대형 바리케이드를 쇠사슬로 묶고 바로뒤에 대형 페퍼포그차 3대를 가로로 배치,『시청앞 노제는 결사저지 하겠다』는 의지표명을 끝낸 뒤였다. 하오7시께부터 영구차를 사이에 두고 시가전을 방불케하는 최루탄과 화염병의 공방이 벌어졌다.

이미 10만 이상의 인파로 불어난 시위에는 우박 쏟아지듯 떨어지는 최루탄에 맞서 화염병 등으로 페퍼포그차 3대를 불태웠다.

그러나 저지선이 뚫릴 가망이 없자 이대입구 도로에서 시민대회를 연 대책회의는 『모든 장례일정을 취소하고 연세대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발표한뒤 최루탄 범벅이 된 영구차를 연세대쪽으로 돌렸다.

연세대로 돌아와서도 강군의 시신은 『발인·영결식까지 마쳤는데 어떻게 또 영안실에 안치하느냐』는 신천 세브란스 병원측의 반대로 진통을 겪어야 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시청앞 노제를 꼭 치러야 하겠다는 대책회의와 그것만은 꼭 막아야 하겠다는 경찰의 충돌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지만 강군의 주검은 안장되지 못한채 또 하루를 보내야 하게 됐다. 15일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은 뻔하다.

발인을 마친 시신의 귀환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그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든 영면을 하지 못하는 강군이 안쓰럽고 애처롭다. 그리고 안타깝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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