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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결단의 순간」/한완상 서울대교수·사회학(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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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결단의 순간」/한완상 서울대교수·사회학(특별기고)

입력
1991.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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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태는 매우 심각한데 당국의 인식은 너무나 안일하다. 강경대군 치사사건과 잇단 분신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안법·경찰법을 변칙처리까지 한 것은 사태를 보는 당국의 인식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같은 안이한 인식이 강경대응을 부추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같다.당국의 이같은 사태인식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지금은 87년 6월 항쟁때와 다르다는 인식이 그 첫째다. 한 시위학생의 불행한 죽음으로 야기된 일시적 현상인데,야권이 이를 빌미로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공안정치가 왜 잘못된 것인가를 되물을 정도로 당국의 현실인식은 원초적이다.

먼저 첫번째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지난 9일 전국 42개 시군서 20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비록 중산층 시민의 호응이 87년 6월 항쟁 때보다 적었다 하더라도,이번 사태는 그때 못지 않게 심각하다. 그 까닭은 이렇다. 지금 국민의 현실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체감물가고와 체감범죄율은 그전보다 훨씬 높아졌고,정치적으로는 표류와 강경간의 불규칙한 왕래로 국민의 불만은 총체적으로 높아졌다.

물론 국민불만도가 높아졌다고해서 염려하는 것은 아니다. 이같은 불만은 6공이 5공 보다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혔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정치지도층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는데 있다. 절대다수 국민이 이러한 불신을 갖고 있다면,그 나라는 이미 심각한 위기에 빠져버린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결과 이 점은 명백하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과 고급공무원들에 대한 국민불신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정치적 대안과 희망을 잃어버린 처절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이번 사태가 터져나왔으니 어찌 이것을 가볍게 볼 수 있겠는가. 사태는 정부여당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87년 6월에는 국민들이 5공 정권으로부터 민주개혁을 기대하지 않았다. 강압과 공포로 일관했던 5공 당국을 국민들은 불만과 불신의 과녁으로 보기 보다는 오히려 저항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런데 6공에 와서 국민들의 민주화기대는 엉거주춤한 표류정국속에서 진행된 미지근한 민주개혁으로 좌절되기 시작하더니,올해들어 공안강권통치가 펼쳐지면서 국민의 불만과 불신은 가중되었다. 게다가 야당마저 양비론적으로 불신당하게 되면서 국민들은 정치적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에 함몰되고 말았다.

당국이 이같은 위기조짐을 직시했다면 강경대군 치사사건으로 빚어진 현사태를 그렇게 안일하게 인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점 대통령과 총리의 몰사회적 몰역사적 인식에 놀랄 따름이다.

둘째로 당국자들은 공안이란 공공안녕인데 이것을 지키려는 정부가 왜 잘못인가라고 항변한다. 지금 공안의 글자풀이를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문제는 공공안녕이 아니라 공공불편,공공불안,공공불만,공공불신이 번지고 있다는데 있다. 도대체 공안의 이름으로 시위학생을 죽여도 된단 말인가. 이번 치사사건이 우발사고가 아니라 공안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살인이라면,그러한 공안은 국민을 안심시키는 공안이 아니라 국민을 공포로 떨게하는 공안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겠다.

지난 몇년간을 되돌아보면,6공의 최대 장애물은 6공 당국속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당국자들의 온갖 불일치 징후가 오늘의 위기를 악화시킨 셈이다. 공약의 공약화(중간평가,금융실명제 등),이미지와 실제간의 괴리,외교와 내치간의 모순,표류와 강경간의 왕래 등의을 불일치징후가 오늘의 난국으로 몰아갔다. 부드럽게 나와야 할 때 매섭게 나왔고,화끈하게 결단해야 할 때 물렁하게 나왔으며,불이 되어야 할 때 물로 나왔고,물처럼 부드러워야 할 때 불처럼 뜨거웠다. 정치적으로 다뤄야 할 때 사법적으로 대응했으니,국민들은 혼란스러웠고 안타까웠다. 분신자살자가 나오고 있는데,대통령은 한가하게 어린이들과 문답놀이를 하고 있음을 전국 방송을 통해 본 국민들은 안타까웠다. 그것은 여유가 아니라 문제의 기피였다.

이제 결단의 순간은 다가왔다. 안이한 시국인식에 의한 강경대응을 강화하여 민주국민들에게 상처를,역사에 흠집을 내든지,아니면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남은 짧은 기간에 근본적 민주개혁을 단행하든지 택일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강경대응을 선택할 경우,6공과 12·12와의 관계를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국민들은 그 관계를 새삼 상기하게 될것이고,그 전의 정권들에 견주어 6공이 누려왔던 상대적 우월성(권력정당성)마저 훼손되고 말것이다. 6공 당국이 부추긴 기대수준에서 볼 때 6공은 5공보다 더 가혹한 역사적 평가를 받게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과감한 민주개혁을 선택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개혁주체로서 이미 그 신임을 상실한 현 내각은 물러나야 한다. 민주적·평화적 공공질서를 세워나갈 비상시국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중심이 되어 반민주적 공안정치를 부추겨온 인적자원과 제도장치를 시원스럽게 정리해야 한다. 이같은 비상시국 내각은 대통령 중심제에서 국민과 더불어 연대하는 일이므로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금 당국자는 과감한 민주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무게와 현 공안내각의 무게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 것인가를 역사적 관점에서 저울질할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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