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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형의원 「IPU총회 8박9일」 체류기/의원이 본 북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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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형의원 「IPU총회 8박9일」 체류기/의원이 본 북한:6

입력
1991.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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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체제가 만난 봉수교회 예배/형제애 역설… 정치색 강해/외군철수·군축·임수경양 석방등 기원 설교/말못할 이유있는듯… 작별땐 애틋한 손길평양에 하나밖에 없는 봉수교회. 아니 북한에 하나밖에 없는 봉수교회.

불과 2년반전 양옥으로 새로 지어 헌당예배를 드린 신도 2백명의 봉수교회.

어릴적 유아세례를 받고 전쟁때 돌아가신 부모님을 늘 생각하며 가정예배를 보아오다가 이제 떳떳하게 봉수교회 교인이 되었다는 김영순(여·53) 집사님.

우리가 떠나올때 해맑은 얼굴을 한 그 집사님이 우리의 두손을 꼬옥 감싸쥐며 애절해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예배는 우리를 기다리느라 15분이나 늦게 시작되었다.

먼저 이성봉 목사님이 우리를 소개했다. 『지난번 문익환 목사님과 유원호 선생님이 다녀가신뒤 남조선에서 두번째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이렇게 한 형제들이 함께 예배드리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선 묵기도와 사도신경의 암송과 찬송가 36장(영화로우신 주)을 부르는 순서까지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나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어서 올려진 김응봉 목사님의 기도는 충격이 아닐수가 없었다.

기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남조선에서는 외군을 철수하게 하여주시고 이 땅에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비핵지대화를 이루게 하시며 어서 빨리 우리나라가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되게 하옵소서. 또 임수경양과 유원호 선생님도 석방하게 하여주시옵고 악의 무리들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또한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머리숙인 남조선 국회의원들에게는 민중의 편에 서서 일하는 용기와 담력을 허락하여 주옵시고…」

기도를 다마쳤을때 회중의 아멘 소리가 너무 컸기에 우리도 큰소리로 아멘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우리는 찬송 383장(예수안에 한형제)을 함께 부르고 성경(요한 15장 11∼13절)을 봉독하였으며 일류 오페라단 보다 조금 더 잘부르는 듯한 성가대의 특별찬송을 들었다.

그리고선 약 40분에 걸친 이성봉 목사님의 「형제를 사랑하라」는 제목의 설교가 있었다. 목사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리 써온 원고를 줄줄이 읽어내려가는 것으로서 설교를 시종했다.

설교제목인 형제를 사랑하는 방법은 우선 남쪽의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남조선 당국자들은 2년전 이곳을 다녀간 문익환 목사와 유원호씨,그리고 임수경양과 문규현 신부를 가두었습니다. 이것은 헤롯왕의 죄악을 방불케 하는 것으로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더욱 규탄해 나갑시다. …우리는 평화를 위하고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서 결결히 단결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불가침선언과 단계적인 군축,외군철수를 이루어야하며,전면개방과 자유내왕의 장애물인 콘크리트장벽을 분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되는 유일한 길은 두 정부를 그대로 두고 연방제로 통일해야하며,이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사회단체와 정당들이 한데 모여 범민족적인 회담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굳게 뭉쳐 나갑시다…」

이날의 원고는 우리를 겨냥해서인지 정치색 일변도였다.

설교가 다 끝난뒤 찬양대는 영어로 부르는 또 한번의 특송을 하였으며 잇달아 헌금순서와 감사기도와 폐회찬송 제3장으로 한시간반에 걸친 예배는 모두 끝났다.

예배가 끝난뒤 나는 내앞에 놓인 갈색 표지의 성경과 찬송가를 내것과 바꾸어 선물로 가져가겠다고 요청하였다.

성경과 찬송가 공히 90년 4월에 처음으로 조선기독교도 연맹중앙위원회에서 발간한 것으로 독자적인 번역 편집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옆에 서있던 고기준 목사님이 선뜻 내청을 들어주었다. 우리를 수행하던 그곳 기관원이 이를 제지하려 하였으나 고목사님이 단호한 말로 「제가 허락하였으니 가져가도 좋습니다」라고 재차 승낙해 주었다.

이 고기준 목사님은 대대로 기독교 집안의 명사가정 출신이며 지금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도 겸하고 있는 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북한땅에서 올리는 이 소중한 예배가 좀더 은혜롭기를 바랐던 우리들 한테는 정치색으로 가득찬 이날의 예배가 어리벙벙하였다.

그러나 목사님들 한테는 부득이한 이유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족히 짐작하였다.

우리가 작별할때 모든 교역자와 교인들이 그 따뜻하고 애틋한 손길과 마음을 표시했던 것이 그것을 잘 반증해주고 있었다.

사실 이날 예배에서 김영순 집사의 눈물어린 감사기도가 없었던들 우리는 더 허전하였을지도 모른다.

김영순 집사는 정치이야기는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남쪽에서 온 형제들과 함께한 것을 감사드리며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갈라져 살아야 하는 겁니까」 「더는 떨어져서 살수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 아니겠습니까」를 복바치듯 기원드렸다.

봉수교회는 북한당국이 허락한 모델에 지나지 않았지만,이것이 또한 믿음의 기지요 겨자씨요 등불일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대목에서 느끼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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