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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형의원 「IPU총회 8박9일」 체류기/의원이 본 북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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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형의원 「IPU총회 8박9일」 체류기/의원이 본 북한:4

입력
199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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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엔 데이트족… 연애결혼 더많아/젊은이들 밝은표정에 직업의식도 높아/순박해도 「정치」엔 완고/고려연방제통일등 경직된 어투로 주장함명희양은 69년생이니까 만 22세이다.

그녀는 지금 원산 사범대학의 통신대학 4학년 졸업반이면서 금강산 유원지 관리소의 해설원으로 일하고 있다. 월급이 96원.

하루 평균 한번꼴로 손님을 모시고 만물상이나 비로봉을 오르지만 어떤 때는 하루 두번 오르내릴 때도 있다.

함양은 지금 국문과에 다니며 장차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게 꿈인데 결단코 일생동안 금강산에 살기로 결심하고 있다.

그런데 함양의 결심때문에 신세가 난감해진 것은 바로 그의 애인이다.

같은 원산 사범대학 4년인 그의 애인은 뛰어난 미인인 함양을 등질수가 없어 일생을 함께 금강산에서 살기로 약속하였다.

「금강산을 버릴래,나를 버릴래?」하고 다그쳤을때 그 사내아이는 힘없이 무릎을 꿇더라고 함양은 득의 만면해하며 자랑한다.

함양의 아버지는 외과의사이고 어머니는 인민학교(국민학교) 교사다. 남동생 하나가 있는데 지금 대학에 재학중이다.

집안도 넉넉한 편인데 함양이 왜 김일성대학이나 김책공과대학같은 일류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단지 통신대학 과정을 밟게되었는지,그 사연이 퍽 궁금했으나 일체 함구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도 좋은 대학에는 입시경쟁이 상당한데 시험에 낙방을 하였을까? 혹은 딴 이유가 있었을까?

단지 그녀는 의사인 아버지가 당원이고 자신도 앞으로 당원이 되어 당에 봉사할 것이라는 결심을 내보였다.

나와 잠시 정치토론을 했을때도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그녀가 금강산 해설원이라는 허술한 직업을 택하고 옷가지와 운동화도 그냥 노동자 풍으로 입고 다니는 것도 이러한 당에 대한 봉사와 충성심의 탓이었을까?

북한에는 함양과 같은 젊은이들이 드물지 않게 있다.

심영섭군(28)은 아직 총각이다. 북한의 결혼적령기인 여자 23∼25세,남자 25∼27세에 견준다면 어서 빨리 장가를 가야할 나이이다.

그는 개성역에서 평양으로 갈때 우리를 도와준 특별 열차승무원으로서 말하자면 우리가 만난 최초의 북한 젊은이였다.

그도 열차승무에 대한 직업적 사명감과 열의는 대단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열차에 올랐을때 그는 열차승무 보다는 정치선전에 더 열을 올렸다.

같이 탄 20대의 두 여승무원도 마찬가지였다. 이종구 국방장관의 핵응징 시사발언 문제,콘크리트장벽을 철거하라는 주장,미군 철수,고려연방제통일….

언제나 판에 박은 것들이지만 젊은이들의 어투가 기성층보다 오히려 더 일방적이거나 단정적일때가 많다.

우리가 묶었던 평양의 주암초대소 식당에서 시중을 들어주던 20세의 두 처녀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중 한명은 「통일이 될때까지 시집도 가지않겠다」고 말하였다.

고위급 인사들이 이용하는 개성­평양간의 특별열차 승무원이나 외빈을 모시는 초대소 직원들은 모두 성분이 확실한 사람들을 뽑아 배치했겠지만,사실은 딴 젊은이들도 성품은 순박하나 정치에는 완고한 공통성을 지닌듯이 보였다.

대동강변 산책로나 모란봉공원에 가보면 남녀 쌍쌍의 아베크족들이 드물지 않게 눈에 띈다.

입장료가 제법 비싼 교예극장(서커스)에 갔을때도 어른 세대보다는 쌍쌍의 젊은이들이 제법 많았다.

지금은 북한에서도 중매결혼보다는 연애결혼이 더 많다는 얘기들이었다.

메이 데이날에 모란봉 공원에서 무리로 춤추고 놀고 있던 남녀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어떻게 어울렸는지 몹시 흥미로웠다.

그중 지도자급 같아 보이던 평양 경공업대학 1학년 박사운군(23)에 의하면 대학과 공장에서 서로 집단으로 연락을 취해 이렇게 남녀 20여명이 모이게 되었는데,이중에는 물론 애인끼리도 섞여있다는 설명이었다.

남쪽에서 말하는 이른바 그룹데이트 같은거 아닌가 싶었다.

그곳도 역시 학생들이라 곤궁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차려놓은 음식이라곤 과자부스러기에다가 명태포와 음료수,그리고 약간의 술이 있었다.

별로 술이 취한 정도가 아니면서도 군무로 춤을 추고 교대로 노래를 부르는 등 잘들놀고 있었는데,다만 다 낡은 중형녹음기가 너무 짹짹거려 소음공해가 심했다.

북한땅 어디를 가나 음식점마다 대개에는 20대의 젊은 「접대원동무」들이 손님시중을 든다.

그들은 한결같이 분홍색 은사직 나일론 치마 저고리를 제복처럼 즐겨입는다.

그들은 음식도 나르지만 손님술잔에 거침없이 술도 부어준다. 그러나 그들은 흔히 생각하는 접대부가 아니다.

마치 컵에 물을 따라주듯 술잔에 술을 따라주는 봉사노동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들 커나는 북한의 젊은이들도 기성세대와는 세대간 갈등을 빚는듯 했다.

정부에서 파견된 한 안내원의 자기집 이야기에 의하면 「이밥(쌀밥)에 무슨 반찬투정이냐」는 할머니의 꾸중에 「그건 할머니 시절의 케케 묵은 옛이야기」라는 아들녀석의 말대꾸가 그런것을 잘 나타내준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경직된 정치의 교조만 제외한다면 젊은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어느곳에서나 하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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