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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죽어선 안된다/긴급호소/김동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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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죽어선 안된다/긴급호소/김동익

입력
1991.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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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젊은이들이 지금 비틀거리고 있다. 살길을 찾지못해 방황하고 있다. 강경대군이 전경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후 분노와 울분을 참지못해 세 젊은이가 분신했다. 2명은 이미 사망했고 1명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이다. 기성세대의 잘못이 젊은이들의 죽음을 초래했다. 친구를 잃은 젊은 세대의 비통함이 오죽 하겠는가. 더구나 분신자살한 자식의 영정앞에 선 부모들의 눈물과 비통함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겠는가.젊은이들의 죽음앞에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참회하고 싶은 심정뿐이다. 우리사회가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롭다면 꽃같은 젊은이들의 참사나 분신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들의 잘못이 젊은이들을 이처럼 희생케 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메는 것같다.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 20대 젊음은 고뇌와 갈등의 세대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3대과제를 해결해야 할 벅찬 시기를 살고 있다. 즉 어떻게 사느냐? 누구와 함께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문제를 20대에 거의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사느냐는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직장을 구하거나 진학을 한다. 누구와 함께 사느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를 사귀고 동료를 만나고 배우자를 찾는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를 해결하기 위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된다. 이러한 과제들을 안고 20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가슴은 터질듯 할것이다. 더욱이 우리의 현실은 그 어느하나도 쉽게 대답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오늘을 산다는 것은 괴로움과 고뇌의 연속일 것이다. 비틀거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인간은 생명이 있을때 인권이 있고,정의가 있고,사랑이 있고,성취가 있는 것이다. 『얼마나 분하고 밉고 답답했으면 제몸에 불을 지르겠습니까. 그러나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문제를 풀수 없고 부모와 가족들에게 평생의 한을 남길뿐입니다. 좀더 크게,좀더 멀리 생각하고 감정보다 이성의 판단에 따르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고 말한 86년도 분신자살한 이재호군의 어머니 전계순씨의 울먹인 호소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생명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나의 생명이건,남의 생명이건 인간 스스로 생명을 끊을 권리가 없다. 생명은 신으로 부터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다. 이러한 생명을 끊는 행위는 살인행위이다. 남의 생명을 끊는것만 살인이 아니다. 자살도 일종의 살인이다. 죄악이다. 인간의 권리는 주어진 생명을 선하고 의롭게 살도록 하는데 있다.

따라서 자살은 어떤 명목이든 영웅시하거나 미화할 수 없다. 자살자를 어떤 이유에서든지 열사라 부르는 것은 합당치않다.

간혹 일부 운동권에서 분신자살자에 대해 열사라 호칭하면서 영웅시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운동권의 풍조는 분신자살을 자극하는 촉진제가 될 위험성이 있다.

이번 계속되는 분신자살 사건에 대해 우리사회 모두가 충격을 느끼면서 잘못된 정치와 제도를 개혁해가는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분신자살을 미화하려는 풍조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젊은 이들이여. 특히 대학생 여러분들은 이번 강경대군의 치사 사건과 계속된 분신자살을 바라보면서 냉정하고 이성적인 자아반성을 할 수 있기 바란다. 우리사회에도 시위문화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화염병과 투석으로 얼룩지는 시위는 명분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화염병과 투석전을 벌이며 데모할 것인가. 언제까지 경찰의 최루탄가스로 인한 피해를 보아야 하겠는가. 오늘과 같은 시위현상은 계속 이땅에 폭력문화를 낳을 뿐이다. 제2,제3의 강경대군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폭력과 불법이 아닌 새로운 시위문화가 형성되어야 하고 당국은 민주적이고 평화스러운 시위를 용인하는 정책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젊은이들의 죽음은 기성세대나 젊은이나 모두가 반성해야 할 충격이며,새로운 세계를 향한 과감한 개혁과 발전의 진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새문안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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