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연 내무장관께.좀 묵은 얘기를 하겠습니다.
82년 4월28일 전두환 대통령은 의령에서 일어난 경찰관 총기난동 사건의 책임을 물어,내무부장관을 경절했습니다. 새장관은 지금의 노태우 대통령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의령 현지를 다녀 온 새장관은,30일 안응모 치안본부장과 함께,긴급소집된 국회 내무위에 불려나가,5공 경찰의 탈바꿈을 다짐했습니다. 그는 「4무(무책임·무사명·무소신·무기력) 추방」이란 말로 의욕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다짐과 의욕은 석달쯤 지나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중 두드러진 것이 의경제도의 창설이었습니다. 87년까지 정규 경찰관을 줄이면서 의경을 충원하여 전체 경찰병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한다,이렇게 하여 절감한 경찰 예산(84년 1백억원·85년 3백50억원 추정)을 일선 경찰관서 운영비 등에 보탠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군돈 한푼 안드는 일석이조의 「묘안」 입니다. 이를 위하여 전경설치법을 고쳐 「대간첩작전을 임무로 하는 전경」 (작전전경)외에 「치안업무의 보조를 임무로 하는 전경」(의경)을 편성 운영할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자질·사명감 보장될까』라는 사설 제목(한국일보 82·8·6)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묘안」을 짜 냈던 치안본부장은 이듬해(83년) 4월 한일합섬 김근조 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문책경질 됩니다. 이 일로 야당은 내무장관 해임권고 결의안을 냈고,그 탓은 아니겠지만,몇달 뒤 노장관도 올림픽조직 위원장으로 전임했습니다.
하지만,이때 잉태된 의경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던지 모두가 아는대로 입니다. 5공 7년에 군병력 동원이 한번도 없은 것은 의경 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못지않은 몇가지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의경을 둠으로 해서 전경대 설치의 원래 취지를 혼란케 하여 「대간첩작전을 임무로 하는 전경」을 데모진압에 전용케 한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불법입니다. 「공격형 데모진압」을 장담케 했던 경찰역량은 이 불법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불법 전용된 의경은 물론 의경도,사실은 군의 일부,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경찰군과 다름없다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경찰 본연의 존재양식과는 동떨어진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경찰력만으로 지탱했다는 5공의 거리질서는 눈가림 신화에 불과합니다.
또 이보다 중요한 것은,의경제도는 한때의 땜질 방편으로 그쳤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제도 자체가 고도의 전문집단을 지행해야할 경찰발전의 정도를 역행하는 것인데,그것을 정상적인 편제로 정착을 시켜서 갈수록 전경의존증을 심화시켜 온 것입니다.
이같은 불법과 신화와 방편의 후과를,지금 우리 모두가 맛보고 있습니다. 그 맛이 가장 떫기는 9년전 4월의 내무부장관과 치안본부장일 듯도 합니다만,그때와 오늘을 견주어 보면서,혀를 차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월은 9년이나 흘렀는데,도대체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이런 되풀이를 언제까지 거듭해야 하는가. 이런 악순환을 단절할 방도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물음이 답답하기는 장관도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지혜가 있다면,그 해답은 자명할 수도 있습니다. 장관이 지금 내 놓아야 할 해답은 9년전 것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이래의 불법과 신화와 방편을 떨쳐 버려야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장관이 이 해답을 선뜻 수긍할 수는 없을 줄로 압니다. 공안질서의 실무책임자로서는 원칙적인 정당성보다는 현실적인 타당성을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폭력데모=폭력진압,과잉데모=과잉진압,불법데모=불법진압의 악순환을 끊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장관의 결심을 촉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불법전용된 전경은 데모현장 1선에서는 빼야 합니다. 불법인줄 알면서 불법을 마냥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데모진압은 수비형으로 바꿔야 합니다. 데모를 교문안으로 밀봉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입니다. 상황을 살펴 데모를 유도하면서 분산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 일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의 혼란은 시민들이 다함께 견딜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화염병 따위가 등장한다면 강력 진압이 마땅합니다. 그 당부는 시민들이 더 잘 판단할 것입니다.
요컨대 데모를 막자면,진압의 적정성을 통한 정당성의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데모의 비용과 진압의 비용을 교량하는 슬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런 지혜가 모자랐던 탓에,지금 이 사회는 엄청난 체제비용마저 지불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 우선 장관이 할일은 화염병이 먼저냐,최루탄이 면저냐는 따위 논쟁의 끝장을 내는 것입니다. 당장 최루탄 선공이 없을 것임을 선언하십시오. 「무병무탄」의 원칙을 밝히십시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말이 오활한 듯이 들릴지 모르나,이것이 바로 데모 현장에서 전경을 뺄 수 있게 하는 길이며,장관이 국회에서 언급한 바,「시위문화정책」의 첫걸음이 됩니다. 그런 조치가 상황을 푸는 실마리로 될수도 있습니다.
경황중에 어려운 결심만을 다그친꼴이 되었습니다만,지금 시점의 장관 책무가 부상된 경찰의 위상문제 또한 극심한 진통을 요구할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제가 어떻게 풀리느냐가 6공 최대 과제인 민주화의 한 실증이 될수도 있습니다. 경찰 본연의 위상에 충실할수 있는 판단을 장관에게 기대하는 마음은 그래서 더욱 간절합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