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첩」 목적변질 법적시비/사제무기로 「보복구타」 예사/전경·의경 구분모호… 직업경찰 대체엔 예산이 문제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을 계기로 전경과 소위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체포조의 해체를 요구하는 야당과 재야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전경」과 「백골단」은 한국적 정치풍토에서 생겨난 특수한 조직이다.
전투경찰의 약자인 전경은 67년9월 대간첩작전 수행을 위해 월남전에서 귀국한 군장병들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청와대 습격을 기도한 북한 무장공비의 「1·21사태」가 발생하자 대간첩망의 취약지점 보강을 위해 정부가 급조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산악과 해안의 취약지구에 배치됐는데 2년간 근무하면 일반부서 경찰로 채용한다는 특혜 때문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후 71년부터는 군입대자들중에서 차출,해안경비와 시위진압에 동원하기 시작했고 유신 이후에는 점차 당초 목적과는 달리 시위진압을 전담해왔다.
그러나 군복무중 강제차출로 시위진압을 맡게된 당사자들의 불만이 고조된데다 국회 등에서 계속 전경의 시위진압동원에 대한 법적근거가 문제화되자 정부는 83년12월 전투경찰대설치법을 개정,전경을 대간첩작전을 주임무로하는 「작전전경(전경)」과 「의무경찰(의경))로 2원화했다.
인원충원도 작전전경은 군에 징집된 병력중 무작위로 차출하고 의경은 지원자를 상대로 소정의 시험을 거쳐 뽑게됐다.
관계법에 의하면 의무경찰은 작전전경과 달리 「치안업무보조」를 수행할수 있는데 그 주요임무는 말할것도 없이 시위진압이며 기타 교통요원·행정·컴퓨터기능요원 등에 종사하고 있다.
작전전경과 의경은 이처럼 업무가 명확히 구분되는 데도 84년부터 대학가의 시위가 격화되자 구별없이 모두 시위진압에 동원돼왔다.
경찰은 전경이 대간첩작전이 아닌 시위진압에 동원되는게 위법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자 「작전전경」을 「의무경찰」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중인데 당초 금년말까지로 예정됐던 기간을 앞당겨 6월말까지 마칠 계획이다.
치안본부에 의하면 현재 전경대의 규모는 1백99개 중대인 기본 편제보다 7개 더많은 2백6개 중대 5만3천여명. 이중 대간첩작전만 수행하는 전경대가 46개 중대이며 나머지는 모두 시위진압과 방범순찰 등에 동원되는 전·의경들이다. 특히 84개 중대 규모인 시위진압기동대는 절반인 42개 중대가 서울에 있으며 광주는 7개 중대로 부산(5개 중대)보다 많아 광주지역의 학생시위가 격렬함을 반영해주고 있다.
이 가운데서 백골단은 32개 중대인데 이중 순경이상의 무술특기 직업경찰로 구성된 「진짜백골단」은 17개 중대. 백골단의 주요임무는 시위주동자 및 과격시위자를 체포하는 것인데 이 때문에 시위현장에서 이들과 시위학생간의 물리적 접촉은 필연적으로 빚어지게 마련이다. 방석모와 전투복 등으로 중무장한 정복전경은 행동이 느려 결국 달아나는 시위대의 체포는 사복체포조가 맡을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전경중에서 신장 1백75㎝,체중 70㎏ 이상자를 우선적으로 선발한다.
최근 학생들의 시위양상이 격렬해지면서 화염병과 각목이 등장하자 이들 백골단은 지휘관몰래 쇠파이프,죽도 등 「사제무기」를 휴대하고 시위대를 붙잡을 경우 분풀이로 집단구타 등을 일삼아 말썽을 빚어왔다.
이들은 시위대 연행성적에 따라 포상휴가 등을 가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반대로 시위대에 밀릴 경우 혹독한 기합이 가해지기 때문에 시위현장에서 과잉진압을 하지않을수 없다는게 전경들의 주장이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백골단 해체를 주장하고 있으나 사복조의 해체는 곧 현재의 「해산과 체포」를 주목적으로 하는 공격형 진압전술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찰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경찰은 시위진압 전경을 점차 일반직업 경찰로 대체할 계획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어림잡아도 매년 3천여억원의 추가재원이 필요해 단기간내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처럼 단순히 병역의무를 때우기위해 복무중인 혈기왕성한 연령층의 전경에게 과잉진압을 자제시키거나 직업경찰관과 같은 공복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바로 이 점이 전경 제도가 안고있는 근본적인 과제이나 치안본부가 장·단기적으로 전경제도의 개선과 시위대처방법 개선을 연구할 「시위진압연구기획단」을 구성키로 했으므로 결과는 기다려봐야 할것이다.
치안본부 고위관계자는 『87년6월 시위가 격화됐을때 군부대의 출동을 억제한 것이 바로 전경이 있었기 때문아니냐』며 『전경제도의 개선은 정치권이 정국을 원만히 풀어나가 학생시위를 유발하지 않는 방법외에는 뾰족한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윤승용기자>윤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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