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격감,경제성장률 둔화,늘어나는 고학력 실업자들,공해에 찌드는 상수원과 자연환경,히로뽕 등 마약 복용자들의 확산,캠퍼스안에 아직도 존재하는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 논쟁,등록금 인상거부마저 학생운동화하려는 왜곡된 논리의 전개,그래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대학가 시위,한치앞도 못보는 무능한 정치역량,침체의 늪에서 헤어날줄 모르는 증시,천정부지로 뛰는 장바구니 물가 등등. ◆고도성장 뒤안길에서 골병이 든 이 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들이 어찌이뿐이겠는가. 신경질적이다 못해 독이 바짝 오른것 같은 공권력,얼빠진 경제관료들,언제나 약삭 빠르기만한 정치인들,발호하는 집단이기주의,내 이익은 결코 손해볼 수 없다는 님비(Not In My Pack Yard)현상,그 사이에서 공익은 뒷전으로 밀리고 소시민과 침묵하는 대다수의 저소득층은 한층 괴롭고 고통을 당하게 마련이다. ◆왜우리 사회가 이지경에 이르렀을까. 그런데도 누구하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접근해 볼 노력마저 하지 않는것 같아 보인다. 정치와 행정,기업과 대학·직장 등 사회의 중추적 기관들의 무력해진 기능에서 우리는 매일 위기의식을 반추하며 살고있다. 그 「위기의 그림자」는 좀처럼 사라질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운동권 학생들과 재야는 국민적 공감대를 이룰만한 이슈를 찾지못해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던차에 터진 전경들에 의한 대학생 「강경대군 상해치사 사건」은 자칫 잘못하면 「한 젊음의 원통한 희생」 이상의 불행을 잉태할는지도 모른다. 강공으로만 치닫던 공권력행사는 준엄한 윤리적 심판대에 서서 호된 비판을 당해야 한다. 고개를 숙인듯했던 학생시위와 재야의 장외투쟁은 거세질 조짐이다. ◆어느 것도 강군의 억울한 희생을 보상 할 수는 없다. 이 국가적 불상사를 잘 수습하고 재발을 막는데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을때다. 「젊은 죽음」을 앞에 높고 행여나 그 의미를 더럽힌다거나 이용가치를 계산하는 망언이 있다면 그것이 여든 야든,운동권이든 재야든 국민의 이름으로 지탄받아야 한다. 「강군의 죽음」은 이 사회 민주화의 마지막 희생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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