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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과 군화/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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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과 군화/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입력
1991.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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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도는 쌀 시장개방에 「쌀휴경보상제」란 생소한 제도의 도입설이 그럴듯하게 떠오르고 있다. 올것이 왔다는 생각도 들지만 창고에 쌓여만 가는 쌀 시장을 개방한다는 것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고,농사를 짓지 않으면 정부가 보상해준다는 휴경보상제도도 먼나라 이야기처럼만 들린다. 일본에선 오래전부터 실시되고 있는 제도지만 농업을 근본으로 삼고 살아온 우리 농부들이 논을 두고도 농사를 짓지 않는 이 제도를 어떻게 받아 들일지 궁금하다.쌀문제가 이처럼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은 우루과이라운드를 무기로한 미국의 압력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우리의 시장개방과 관련,지금까지는 부문별로 접근해왔지만 앞으론 걸프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산업 및 경제구조의 조정까지 총체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4의 개국」이라도 해야할 판이다.

우리는 쓰라린 개국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말의 「제1개국」은 쇄국에 이은 어쩔수 없는 개국이었다. 외국군의 군화 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졌고 끝내는 나라를 잃었다. 35년간의 암흑생활은 타의에 의한 개국의 아픔을 뼈속깊이 안겨주었다.

「제2의 개국」도 마찬가지였다. 2차대전이 끝나고 해방이 됐으나 우리가 깨달음을 갖기도 전에 외국 바람이 불어닥쳤다. 나라는 두조각이 났다. 북한에는 소련군의 군화 소리가 드높았고 남한은 파란눈의 미군들이 나라를 다스렸다. 남북한에 진주한 외국군들은 우리의 뜻보다는 그들의 뜻에 따라 나라를 통치했다. 그 결과 남북한엔 두개의 정부가 들어섰다.

한반도에서 그들의 군화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던 그 순간 포성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6·25전쟁이 터졌다. 남북한엔 온통 외국군의 군화소리가 요란했다.

국토는 황폐해갔다. 국민들은 식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산야를 헤매어야 했다. 전통 문화는 외국군과 함께 들어온 서양 문화에 그 모습을 흐렸다. 민족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조차 자각할 틈이 없었다.

「제3국의 개국」은 모양새가 조금은 나았다. 흐름이 뒤바뀐 해외 진출의 개국이었다. 자유수호란 명분을 내건 월남 참전은 수동적 입장이 주류를 이룬 역사를 지닌 우리에게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미국의 요청과 지원으로 이뤄지긴 했지만 월남참전 용사들의 힘찬 발걸음과 함께 해외진출 시대의 막을 열었다.

월남전이 끝난후에도 해외진출은 더욱 눈부셨다. 중동의 건설현장은 물론 고도성장의 첨병들인 수출의 역군들의 발길은 지구가 좁았다. 월남전선을 누빈 참전용사들의 힘찬 군화소리 만큼이나 힘찬 속도로 나라의 살림도 커졌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외국의 칭찬도 들었다.

이처럼 해외진츨이 중심을 이룬 제3의 개국은 그 흐름이 부메랑처럼 U턴을 해 우리에게 돌아왔다. 국제화 시대에 어울리는 각가지 국제적 역할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항상 혜택만 받을수는 없는 국제사회의 상대적 논리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쌀은 이의 대표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미국 등의 시장개방 소리가 높았다. 관세를 낮추라는 요구뿐 아니라 과소비추방 운동까지 간섭했지만 쌀 만큼 그 충격이 크지 않았다. 쌀은 우리 식생활의 바탕이자 문화로 논리로만 따질수 없는 묘한면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론 미국의 압력이 어디에서 멈출지 알수 없다. 소련과의 우호조약 문제까지 묘하게 대두된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걸프전의 승리란 군화냄새가 물씬나는 미국의 압력을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다. 1·2·3의 개국을 거울삼아 볼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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