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단체·시민 「파병반대」데모로 어수선/환송식장 나카소네 전 총리도 참석 눈길【요코스카(횡수하)=문창재특파원】 26일 상오9시 2차대전후 처음으로 일본 자위대병력과 함정이 해외에 파견됐다.
페르시아만에 부설된 기뢰제거작업에 협력한다는 평화목적을 명분으로한 것이지만 반전시민단체들의 항의데모로 어수선한 분위기속의 출항이었다.
이날 상오8시 요코스카(횡수하) 해상자위대기지내 요시쿠라(길창) 잔교에는 소해정 「아와시마호」 「사쿠시마호」,보급함 「도키와호」 등 3척의 함정승무원 2백29명이 정렬하고 가족 친지 동료대원 등 1천3백여명이 배웅하는 가운데 간략한 환송식이 베풀어졌다.
가이후(해부준수)총리를 대신해 참석한 오시마(대도) 관방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기뢰제거와 처리는 국제사회에서 큰 책임이 부과된 우리나라에는 인적 공헌의 하나라는 의의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환영식장에는 이날 자민당 복당이 결정된 나카소네(중증근강홍) 전 총리도 나와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요코스카기지를 떠난 3척의 함정은 가고시마(녹아도) 남쪽 아마미(엄미) 섬에서 사세보(좌세보) 구레(오) 기지를 출항한 다른 3척의 함정들과 합류,오는 6월초순께 페르시아만에 도착하게 된다.
○…환송식이 시작된 상오8시 이전부터 반전운동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요코스카기지 주변 해상에서 고무보트와 요트 등 10여척에 분승,해상데모를 벌였다.
「요코스카평화선단」 등 3개 단체회원들은 「소해정 파견은 전쟁에의 길이다」 등의 플래카드를 배에 달고 1㎞ 거리의 행사장을 향해 『일장기를 단채로 아시아의 바다에 가지말라』고 외쳤다.
○…환송식이 진행되는 동안 기지와 접해있는 부두공원에서도 여러 단체의 항의 행동이 계속됐다. 유명한 좌익단체 중핵파회원 30여명은 헬멧차림으로 공원에 연좌,「소해정파견 절대저지」를 외쳤다.
바로 옆자리에서는 나혼(일본)대학생 10여명이 「자위관은 출항을 거부하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파견반대 시위를 벌였으며,전학련 회원들도 같은 내용의 플래카드와 피켓을 흔들며 「해외파병」에 항의했다.
○…「대중당」 깃발을 든 20여명의 당원들은 요코스카기지 정문앞에 모여 「소해정파견=자위대해외파병,용서하지말라」는 유인물을 기자들에게 나누어주며 『기지 책임자를 만나 항의의 뜻을 전하겠다』고 요청하다 거부당하자 항의문을 낭독한 뒤 부두공원에 모여 항의집회를 가졌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25일 소해정파견을 항의하다 귀속된 전·현직 자위대원 3명이 방위청 장관에게 제출하려던 청원서 사본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기도.
○…반대데모대의 한편에서는 일부 우익단체 회원들이 「소해정파견 지지」란 플래카드를 펼쳐들어 보이기도 했으나 숫적으로 열세여서 목소리는 「반대」 마이크 소리에 파묻혀버렸다.
○…한편 소해정이 출항한 사세보 구레지역에서도 25일부터 파견반대 데모가 있었으며 동경에서는 25일 방위청앞서 반전단체들의 항의행동이 있었다. 또 25일 밤 동경 중심가인 시부야(삽곡)역 앞서도 1백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지금 일본이 할일은 쿠르드족난민 구제다. 소해정파견은 국제사회 공헌이 아니다』고 외쳤다.
○…이번 소해정 선단의 사령관은 2차대전말 미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해군소장의 아들로 밝혀져 화제.
방위청에 따르면 일본이 전후 처음으로 해외에 파견하게 된 6척의 소해정들이 해상자위대의 주요 기지인 구레에서 소해정들을 관장해온 오타·오치아이 함장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
오치아이 함장은 지난45년 6월 미군과의 오키나와(충승) 전투에서 8천9백명의 병사와 함께 전사한 오타·미노루 소장의 셋째 아들. 오타소장은 당시 자살했다는 설도 있다.<요코스카(횡수하)=문창재특파원>요코스카(횡수하)=문창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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