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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싹수가 노랗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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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싹수가 노랗다(사설)

입력
199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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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살림을 되도록 알뜰하게 꾸려가라고 만든 지방의회가 시초부터 요란을 떤다. 의회 건물을 새로 짓고 시설은 호화롭기 짝이 없어 외화내빈의 악폐를 또 드러내고 있다. 회의실과 의장실 등을 국회에 질세라 으리으리하게 꾸미거나 꾸며가고 있다는 것이다.「가난할수록 기와집을 짓는다」는 속담이 있다. 허약한 지방재정 자립도를 생각하면 꼭 들어맞는 말이다. 겉치레가 심하면 실속은 으레 빈약하다. 무턱대고 세계 으뜸을 지향하는 허세 탓으로 동양 제1이라는 의사당을 여의도에 세웠다. 그러나 웅장한 건물과는 반대로 의회정치는 불신과 저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라의 체통을 위해 의사당은 그렇다고 치자. 지방의회가 그 본을 따를 이유는 없지 않은가. 회의장은 의원들이 모여 앉을만한 장소면 충분하다. 의장실이 꼭 필요하다면 업무에 지장이 없을만한 정도면 된다. 시의회 의장실을 꼭 시장실처럼 차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은 웃음거리 밖에 안된다. 회의실이나 의장실이나 모두 기존시설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허세가 실리를 누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방재정의 형편이 어렵다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 가난한 사정을 무릅쓰고 몇 10억원의 거액을 함부로 쏟아 건물을 신축하는 낭비 바람은 호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단 한푼의 예산이라도 깎듯이 아껴 지역사업에 보태는게 지방자치의 본령이며 이념이다. 지방의회의 운용도 최소의 불가피한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올림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의원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의회행정 요원도 소수정예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의원수보다 많은 행정인원의 배치는 납득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과감한 시정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지방의회 의원을 상전으로 모시려고 뽑은 것이 아니다. 알뜰한 설계로 살기 좋은 마을을 가꿔 달라는 당부를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산을 쓰는 우선 순위를 사심없이 바로 잡아 주는 양식이 요구된다. 지방자치의 활착을 꾀하기 위해 행정관서의 외화 위주 사고도 빨리 청산해야 할 과제임을 아울러 지적해 두고자 한다.

시작부터 싹수가 노랗다는 불만이 더이상 번져가지 않기를 바란다. 지방의회 의장과 의원들이 솔선해서 검약을 실천하는 결의를 구체적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의회 건물의 신축은 즉시 억제하고 불필요한 시설과 호화집기는 사양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국민의 국회에 대한 실망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지방의회의 참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저절로 드러난다. 국회와 난형난제가 되면 지방자치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결국 시들고 만다.

30여년만에 재출발하는 지방의회 의원들의 사명은 민주정치의 성패와 직결됨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민의 마음이 떠나면 지방자치는 허공에 뜨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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