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복 할머니가 서울에 왔다. 2차대전때 일본군의 정신대에 끌려가 고난의 삶을 격었던 산 증인 노할머니의 두번째 모국방문은 새삼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지난 84년 5월 42년만의 첫 고국방문 당시 그처럼 들끓었던 일제의 만행에 대한 민족적 분노가 그후 7년동안 과연 어떤 결실을 맺었는가를 생각하면 자책과 분노마저 솟구친다. 우리는 노할머니로 상징되는,정신대에 끌려갔던 20여만 우리 여성들의 사무친 한을 풀기위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민간차원에서는 진상규명과 일본만행규탄에 진력해 왔지만 정부차원에서는 지금껏 성의있는 문제해결 자세나 진전이 없었다.지난번 노할머니의 첫 방한을 계기로 들고 일어난 전국의 여성단체들은 작년 10월 일본 가이후총리 앞으로 보낸 공개서한에서 일본정부의 정신대 강제연행 사실인정,전모공개,희생자위령비 건립,생존자 및 유족보상,정신대를 반성하는 역사교육 실시 등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우리정부에 대해서도 정신대문제에 대한 무성의를 비판하고 일본과의 불평등·굴욕외교를 자주·평등외교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정당한 요구에 대한 일본측의 대응자세는 한마디로 애매모호한 발뺌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처음 『정신대가 민간차원에서 이뤄진 일이어서 정부가 진상조사는 할 수 없다』고 모른체 했다.
그러나 국제여론은 물론이고 일본의회와 일본 민간단체에서 마저 진실규명과 성의있는 책임완수를 요구하고 나서자 가이후총리가 이달초 의회에서 『가능한 범위내에서 조사를 실시해 진실을 밝혀 내겠다』고 모호하게 답변하게 고작이었다.
일본 정부로서도 일본민간에서 「정신대문제를 생각하는 모임」이 이미 결성됐고 국회도서관에서 마저 일제가 강제징용했던 정신대명단이 일부 발견되고 요시다씨 등 우리처녀들을 사냥질했던 일본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까지 나오는 형세에 몰려 더이상 만행을 부인치 못하고 있을뿐인 것이다.
이같은 엉거주춤한 일본정부의 자세를 끝내 성의있는 사죄와 책임완수로 전환시킬수 있는것은 가일층의 국민적 노력과 함께 우리정부의 책임이 아닐수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정부는 지금껏 지난 65년의 한일청구권 협정체결을 이유로 정부차원의 보상제기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으나,이미 일본총리마저 사실을 부인치 못하기에 이른 마당에 새로운 사실발견을 이유로 노할머니와 같은 20만 여성들의 한을 이제라도 풀어주는 교섭을 펴야 마땅을 것이다. 정신대문제는 어찌보면 노할머니나 정신대에 끌려갔던 우리여성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민족자존을 회복하려는 가장 중대하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같은 문제의 해결없이 진정한 양국간의 우호·선린은 결코 불가능하고,우리가 노할머니를 더이상 대할 면목도 없어진다. 일본정부는 이런 사실을 감안,정신대문제 해결에 더이상 소홀함이 없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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