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협의없는 “전격”… 미등 우방관계 신중고려/북한에 개방 자극제 될수도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20일의 한소 정상회담에서 제의한 우호·협력조약의 실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이 제의에 노태우대통령은 앞으로 있을 양국간 외무장관회담에서 협의토록 하자고 말해 구체적인 입장표명을 일단 유보했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대응은 고르바초프의 제안이 갑자기 이뤄진데다 구체적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리측은 우호조약의 의미가 소련이 북한과 맺은 것과 같은 군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아래 제의자체가 북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우리측 관계자들은 이같은 소련의 제의가 부각되기를 한때 은근히 기대했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제의의 구체적인 성격을 모르기 때문에 미국 등 기존 우방과의 관계를 의식,우리측의 태도표명에 지극히 신중해야하는 어려움도 동시에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날 회담결과를 공개하면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조약체결 전격제의를 이례적으로 강조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비롯되고 있다 .
북방외교를 추진하면서도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국익의 최대치를 찾아야하는 우리외교의 어려움이 단적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소련이 제의한 우호협력조약은 아직은 그 구체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있다.
한소양국간에 이 문제에 대한 사전협의가 전혀 없었고 제의자체가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단지 현재의 한반도주변 정세에 비춰볼때 군사적인 측면은 배제된 제의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할 뿐이다.
한미양국간에 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군사동맹관계가 엄존하고 있고 소련과 북한이 한미관계보다 더욱 강력한 군사협력체제를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소련이 역시 군사동맹을 상정한 내용들을 이 조약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련은 과거 북한을 포함한 동구국가 등과 군사동맹을 의미하는 우호·협력조약을 맺었고 지금도 이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소련이 제의한 우호·협력조약이 군사적 의미를 배제한다고 속단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소련은 지난 61년 북한과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만기를 맞았던 이 조약은 상호폐기 통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효력이 5년간 연장됐다.
소련은 중국과도 지난 50년 같은 이름의 조약을 체결했으나 지난 79년 중국측의 일방적 통고로 폐기됐다. 이밖에도 소련은 유고 알바니아를 제외한 동구국가들 몽골과 같은 내용의 조약을 맺었고 이집트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국과들과도 준 군사동맹성격의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처럼 소련이 외국과 체결했던 「우호·협력조약」은 주로 군사적 성격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물론 국가간 조약의 성격은 단순히 명칭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양국간 합의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소련은 지난해 통일된 독일과 불가침조약 성격의 선린·협력조약을 체결했고 스페인 등과도 비슷한 성격의 조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소련의 이번 제안을 예단해 어떤 입장을 결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수교 7개월만에 소련이 이같은 제의를 해온 사실자체가 파격적인 것으로 북한을 자극해 개방으로 나오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게 정부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소련의 입장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거부 의사를 서둘러 밝히는 것 역시 성급한 행동이라는 주장은 우리가 북방외교에 기울이고 있는 노력에 비춰볼 때 타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측의 이같은 어정쩡한 태도는 자칫 미국의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나아가 한미관계를 근간으로 한 우리외교의 기조를 헝클어놓을 가능성도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제의와 우리의 대응은 추후 실질적 논의의 진전과는 별개로 북방정책을 적극 추진하고자 하는 우리 외교가 맞는 새로운 난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제주=정광철기자>제주=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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