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길을 잃어가고 있다. 보도는 인파로,차도는 자동차로 차고 넘쳐 좀처럼 움직이지를 못한다. 고속도로나 골목길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데서나 승차난 주행난 주차난이 밀어 닥쳐 교통고는 날로 가중되어 간다.길만 막혀 있는 것이 아니다. 틈만 보이면 자동차가 코를 박고 끼어드는 형편이니 널찍한 대학의 캠퍼스조차 몸살을 앓게 마련이다. 교수와 교직원 차량에다 학생들의 승용차 통학이 급증하며 급기야 대학구내가 교통사각 지대로 변했다. 학생의 교수에 대한 행패의 발단이 차선 시비였음을 상기할만 하다.
대학마다 사정이 다르겠으나 주차난으로 인한 고심은 공통적인 현상일 것이다. 따라서 교내 불법주차에 범칙금을 물리거나 학생 승용차의 교내 출입을 막는 운행제한이 여러모로 가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승용차 보급이 보편화되어 가는 참에,누구는 타도 좋고 누구는 안된다는 제한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생도 예외의 강요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 아래,우리는 대학인의 절제력과 판단력의 발휘를 아쉬워 한다.
초·중·고교생의 자가용 등교는 여전히 빈축을 사고 있다. 학부모의 과보호가 분별을 잃었기 때문이다. 걸어다닐 자식을 업어 키우면 역효과만 일으킨다. 자녀교육은 자애와 엄격이 병행되어야 성공을 거둘수 있다.
같은 차원에서 대학생의 승용차 통학은 자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학생이 되면 인격은 독립체이지만 경제력으론 부모에의 의존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굳이 자가용을 고집할 필요와 그럴만한 용도가 있는지 의문이다.
편리를 취하려 한다면 배우는 학생답지가 않다. 불편과 어려움을 참고 이겨냄이 교육의 덕목이 아닌가. 시간을 아낀다는 핑계는 더욱 웃음거리 밖에 안된다. 현재의 교통사정은 대중교통수단이나 승용차나 별로 차이가 없다. 오히려 체증을 확대시킬 따름이다. 주차할 장소를 못찾아 헤매는 시간이 아깝다.
대학의 주차난은 교통의 측면에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위화감의 조성을 귓전에 흘려서는 안된다. 정도가 지나치면 학우와 학내의 갈등요인으로 음성적 마찰을 일으킬 소지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시와 냉소로 학원의 분위기를 깨칠 위험이 내재할지 모른다.
지각 있는 학생과 학부모의 협력이 필요하다. 자녀의 희망사항을 무조건 받아 주는게 부모의 애정은 아닐 것이다. 불만을 해소해 주기보다 극복하는 힘을 복돋워 줌이 바른 도리이다.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대학인은 외형의 안일을 잊고 자기 개발에 전념해 주기 바란다. 진심으로 자율을 희구하는 대학인은 먼저 자기 억제를 터득해야 한다.
대학의 질서는 대학인이 스스로 쌓아가야 한다. 캠퍼스 주차난은 양식과 질서의식으로 물리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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