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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시민운동의 활성화/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 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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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시민운동의 활성화/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 교수(정치진단)

입력
1991.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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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밀착된 다양한 활동 민주화 기여진난 몇년동안의 숨가쁜 사회변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성취한 두드러진 성과의 하나로서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꼽을수 있다. 제도권 정치세력들이 예나 지금이나 민생문제를 외면하고 권력 놀음만을 일삼으며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고,그간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하던 재야세력들도 끝내 정치권 진입을 마무리한 오늘의 시점에서,시민 스스로가 조직한 자발적 결사체들이 우리의 삶에 밀착된 운동단체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최근의 지자제선거와 폐놀방류 사건을 둘러싸고 이들 시민단체들이 벌인 자구적 차원의 다양한 활동은 자못 인상적이어서,마치 정치권에서 잃은 미각을 여기서 되찾는 기분이기도 하다.

지난 몇년간 민주화의 소용돌이 속에서,특히 초기의 폭발적 과정 속에서 급진 운농권세력이 지향했던 기본적 입장은 체제변혁론이었다. 대놓고 공언하기는 꺼렸지만,이들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 자체자를 거부하고 이른바 민중해방의 꿈에 매달렸다. 이에 대응하여 집권세력은 상황에 밀려 겉으로는 제한적 민주화를 추진하며,다른 한편으로는 온갖 수단을 강구하여 기존체제와 기득권 보호에 안간힘을 썼다.

많은 시민들은 이러한 양극적인 대안모두에 거부감을 느꼈으나 도시 그들의 욕구를 담아줄 제3의 그릇이 마땅치 않았다. 한가닥 희망을 걸어봄직한 제도권 야당들도 몸짓만 민주화의 시늉을 했지 기존의 때묻은 권력정치의 아들이기는 여당이나 다를바 없다. 바로 이러한 기성의 집권문화와 파격의 해방문화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와 시민문화의 잠재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들 시민운동단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시민 단체들은 정치권 밖에서 한국정치의 빈틈을 메워주며 시민들에게 제3의 대안의 가능성을 일깨워준다.

시민운동단체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기존 정치세력들에게 좋은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들은 오늘 한국정치가 외면하는 민생문제를 실용적,실천적,문제해결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들은 시민들 자신과 이웃의 일상적 삶속에서 살아서 숨쉬는 제반 문제들에 관심을 경주한다. 일그러진 경제질서,더럽혀진 산하,훼손되는 소비자주권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또 바르고 깨끗한 정치문화와 공직윤리를 일깨우기 위해 거짓을 고발하고,실현가능한 처방을 제시한다. 몇몇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활발한 정책토론회와 여기서 제시되는 실천방향들은 청신하고 개혁적이다.

거기에는 으례 현상호도에 그치는 관료적 해결책이나 공허한 변혁논리만을 외치는 급진민중주의의 거친 숨결대신에 시민들 스스로의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차분히 정의하고 이성적으로 풀어 보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 시민단체들이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회비만으로 이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신뢰와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증거한다. 권위주의적 동원문화의 터전에서 참여적 시민문화가 급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민운동의 발전은 우리 사회에 민주적 헤게모니의 터전을 넓힌다는 면에서 함축하는 바가 크다. 이들 다양한 시민단체들은 비록 경제정의,환경,인권,여성문제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며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구심점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대체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화라는 큰 목표를 공유하고 있으며,공동의 관심사를 향하여 함께 연대한다. 이들은 기존의 관료적 권위주의체제가 추구했고,아직도 그 유제가 엄존하는 「억압」과 「성장」의 논리에 대항하여 「참여」와 「인간회복」의 가치를 선양하는데 앞장선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시민의 이름으로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시민사회의 부재위에서 국가의 절대적 우위를 보여왔던 말하자면 국가­사회간의 비대칭적 역학관계가 지배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민운동을 통한 시민사회의 민주적 헤게모니의 확산은 국가­사회관계의 기존도식을 서서히,그러나 착실하게 바꿔놓고 있다. 이제 시민사회는 정권과 국가관료제의 비민주성과 정책실패,정치세계의 부도덕성,그리고 재벌의 횡포 등 국가와 그 언저리에서 맴도는 기성제도권의 온갖 거짓과 잘못을 고발하고,여기서 한걸음 더나아가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시민운동단체들이 공익을 추구하면서도 공식적 정치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들의 활동범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한계는 제도권 정치와의 올바른 기능적 연계성에 의해 보완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단체들이 집약하는 시민들의 욕구와 이익내용들,그리고 정책대안들이 실제로 정책화되어 시민의 구체적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권 정치의 민주적 감수성이 제고되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제도권 정치와 그 주역인 여야정당들의 자기쇄신이 강력히 요구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특히 시민운동의 민생동기와 실용주의적 정책지향은 제도권 정당들이 배워 마땅한 덕목들이다.

시민운동의 활성화와 제도권 정치의 자기쇄신에 의해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거리가 가까워 지고 서로가 서로를 포용할 때,우리사회의 민주화는 한차원 높은 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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