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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 순국선열 합동추모제/올부터 「노제 푸대접」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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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 순국선열 합동추모제/올부터 「노제 푸대접」 면한다.

입력
1991.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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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등 8인 합사당 의열사 완공… 13일 봉행/묘 이전 압력·운동장 설립등 잇단 수난극복/사적 지정… 추모위 발족후 13년 노력 결실/새 영정 곧 봉안… 동상·기념관등도 건립 극일 현장 추진79년부터 매년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13일에 서울 효창공원에서 봉행돼온 효창원 순국선열 합동추모제전이 임정 72주년인 올해 13년만에 노천제사를 벗어나게 된다.

석오 이동녕,백범 김구,동암 차이석,청양 조성환 선생과 이봉창,매헌 윤봉길,주파 백정기의사 등 7인의 유해와 안중근 의사의 허묘가 모셔진 효창원에 합사당인 의열사가 최근 완공돼 노제를 겨우 면하게 된것이다.

89년말에 공사를 시작,지난 3월에야 마무리 공사를 마친 의열사에는 7위의 영정을 모신 사당과 내삼문인 창열분,외삼문인 의열문이 세워져 있다.

완공과 동시에 사적 330호로 지정된 의열사는 건립되기까지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효창원은 본래 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와 생모인 의빈 성씨,순조의 후궁 숙의박씨와 영온옹주의 묘가 있던 곳이었으나 일제가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개칭하고 세자묘를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케한 비운의 사적지다.

광복과 더불어 일본에서 서거한 3의사의 유해를 봉환한 김구 선생은 국민장의 위원회는 유서깊은 효창원에 유해를 안치했으며 뒤이어 중국에서 이동녕·차리석 선생의 유해를 모셨고 귀국후 서거한 김구·조성환 선생도 이곳에 잠들게 됐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이곳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고 이승만 정권은 오히려 선열들의 묘를 옮기라는 압력을 넣었다가 김창숙·이인선생 등 각계의 반대로 좌절되자 아시아 축구대회 유치를 구실로 효창운동장을 만든다며 효창원을 마구 파헤쳤다.

그뒤 유족대표와 이인·곽상훈·이희승·이병도·태완선·김재홍씨 등 각계인사들은 78년 3월 40인의 발기인을 중심으로 효창원 순국선열추모 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이듬해인 79년 3·1운동과 임정수립 60주년을 맞아 4월13일을 택해 처음으로 이곳에서 합동추모제를 올렸다.

추모위원회는 정부에 사당 건립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여러차례 냈다. 87년에는 고문인 윤보선 전 대통령이 정부에 건의문을 보냈으나 오히려 『대전에 국립묘지가 생겼으니 이장하는게 어떠냐』고 권유하는 등 탐탁지 않게 생각하다 윤전대통령의 끈질긴 요청에 못이겨 결국 사당건립 공사가 시작됐다.

위원회는 이번 13회 추모제전이 의열사에서 치러지는 첫 행사인 만큼 대통령·3부 요인·각 정당대표 등 각계에 초청장을 보내고 추모를 보다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재홍회장(65)은 특히 사당건립과 함께 지난 13년동안 집에 보관해온 7위 선열의 영정도 의열사에 옮겨놓았다. 김회장은 그동안 영정을 모실곳이 없어 방한칸을 영정실로 만들고 한달에 두번씩 꼭 상식을 올려왔다.

8월15일까지 7위 선열의 새 영정을 기증하겠다는 독지가도 나타나 이 영정은 독립기념관 등에 옮겨지게 된다.

의열사 건립을 계기로 추모위원회는 효창공원을 성역화해 극일의 현장으로 가꾸기로 하고 7위 선열의 동상과 임정기념비 건립을 범국민 모금운동을 통해 펼쳐나갈 계획이다. 김회장은 또 안의사의 허묘를 볼때마다 송구스러운 심경이라며 『정부차원에서 안의사의 유해봉환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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