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자못 역설적인 경구를 뱉은적이 있다. 『당신이 법이나 소시지를 좋아한다면,제발 그 제정 또는 제조과정일랑은 지켜보지않는게 좋다』는 내용이었다.지엄하고 권위를 인정받아야 할 법도 그 제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힘겨루기나 로비과정을 다 알아버린다면 결코 좋을게 없고,비록 맛있는 소시지일지언정 돼지의 살이나 내장을 다듬고 토막내 만드는 과정을 보고나면 입맛을 잃어버릴수도 있다는 19세기의 해학성 경고인 것이다.
그런데 20세기도 저무는 마당인데 그와같은 비스마르크적 경고대상에 한가지 더 추가할게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바로 언론이라는 것이다. 무관의 제왕으로 추앙받으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여론을 선도하는 그 막강한 영향력도 그 내부를 까뒤집고 보면 퇴색할수도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요즘 언론이 자못 난타당하고 있는듯한 기미가 역력하다. 검열을 받던 옛날과는 다르지만 밥상머리에서마저 『촌지라는 말이 왜 나오느냐』는 볼멘 소리를 듣게될 지경이면 난처한 사정은 짐작키 어렵지 않다. 당국에서 흘린 언론계의 수서거액수뢰설이 자기집 안방에서마저 따가운 반향을 일으키는 때인 것이다.
언론에 쏠린 투정이나 주문도 가히 한두가지가 아니다. 고교다니는 막내는 『7년이나 사귄 친구가 왜 울면서 유학을 떠나야 하느냐』며 대입제도를 이 지경으로 방치한 책임의 일단을 서슴없이 언론에 돌린다. 남편의 박봉에서 과외수업비를 쪼개내어야하는 주부의 하소연은 어쩔수 없이 흘려버린다 치자. 어느 촉망받는 교수가 기술시대라지만 참담한 수준의 우리 공학교육현실을 담은 백서를 건네줬을 때는 언론계에 몸담은 한사람으로 왠지 얼굴이 화끈거려 오는 것이다.
사석에서 만난 어느 재벌기업의 동창은 『너희는 과실에 의한 독극물 배출과 고의적 방출을 구별도 못하냐』고 시비를 걸며 『왜 신문마다 비밀배출구사진이 다른가』고 마구 따져왔다. 그리고 국가기관이나 정계에 몸담은 친구들의 역습은 또 어떠했던가.
『야! 말도 마라. 너희는 어디 깨끗하고,우리만 흙탕물이란 말인가. 대안도 없이 그렇게 볶아만 대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대어들었던 것이다. 그런 흙탕물논리가 아마 언론계 수서거액수뢰설로 번져나왔을 법하다.
곰곰 생각해보면 언론계는 지금 기로에 서 있는것 같다. 언론자유가 뿌리째 억눌렸던 시절에는 동정이라도 받았지만,지금은 그런 동정은 커녕 온갖 타박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것이 아닌가하는 의념마저 생겨나는 것이다.
얼마전 교내에서 학생들에 의한 구타사건으로 화제에 오른 어느 젊은 언론학교수가 그보다 앞서 수서사건보도에 유감을 표시하며 신문에 기고했던 글의 내용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 교수는 오늘의 언론은 윤리,정열,논린에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질책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언론이 자칫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온갖 잘못의 대명사 노릇을 하게될수도 있음을 감지케 되는 오늘이다. 위기라면 이런 위기가 또 없다. 입시제도가 잘못돼도 언론에 화살이 날아오고,페놀오염을 자기들이 일으켜 놓고도 언론을 원망할수가 있고,수서사건은 과연 누가 일으켰는데 부끄러운 촌지수수설도 그만 언론이 수서사건의 최대희쟁자취급을 당할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물론 이처럼 약방의 감초격으로 매사에 언론이 타박맞을수 있는 세상이란 언론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얄팍한 위안을 불러올수도 있겠지만,그 보다는 언론이 해온 탓이 분명 앞선다고 고백하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이웃 사촌의 쓰라림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최근 언론선진국 미국에서마저 걸프전보도를 놓고 언론이 홍역을 치르는게 우리에겐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보이기도 한다. 당국의 철저한 사전준비와 통제에 일방적으로 당해 「걸프전 최대의 희생자」라는 국민적 질책을 받아온 미국언론계가 스스로의 과오를 반성,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본래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전쟁당시 통제로 불가능했던 진상보도를 전쟁이 끝난 지금이라도 차근차근 따져나가려는 미국언론의 자세야말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벌써부터 가려졌던 진상이 터져나온다고 한다. 스마트탄의 명중률신화의 저변에 70%의 오폭률이 있었고 이라크병력을 턱없이 과대평가했다는 등의 바로잡기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제부터가 우리의 신문주간이다. 제35회 신문의 날을 맞아 언론단체들은 「자정으로 신뢰회복,자율로 책임완수」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기자협회도 결의문을 채택,지속적인 자정을 다짐했다고 한다. 우리사회에 발아하기 시작한 「내탓이오」 정신과 시민의식이 언론계에도 불붙어 더이상 언론이 도마위에 오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새삼 언론의 본령을 생각한다. 자정의 정열과 함께 전문성과 끈질김을 두루 갖춰 실체적 진실과 가려진 문제점들을 계속 굽힘없이 써나가는 것으로 온갖 난타에 화답할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남는 것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