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는 미 뉴햄프셔주의 대서양연안에 있는 소도읍 더럼(Durham)에 하루 생산량 50만배럴 규모의 정유공장을 세우려 했었다. 뉴햄프셔주 지사는 미국에 온 오나시스를 뉴욕 공항에까지 마중나갈 만큼 오나시스의 계획에 감격했다. 왕새우,요트놀이의 명소로 알려졌을 뿐 거의가 어민과 농민인 낙후지역에 정유공장이 생기면 지역경제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것이 주정부의 용역조사결과였고 뉴햄프셔주 유권자 1명 중 96명은 찬성이라는 여론조사도 나왔다.그러나 유치운동이 한창일무렵 SOS(Save Our Shores)라는 소수의 환경보호단체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지적하며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주민설득에 지친 주지사는 주립대에 조사를 의뢰했으나 조사결과는 더럼만이 오염되고 왕새우가 전멸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지사는 조사결과를 숨겼다. 74년 3월8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는 압도적 다수로 공장유치가 부결됐다. 주지사는 다시 「전체주의 이해에 관계되는 문제는 주의회의 결정이 지방자치단체의 결정보다 우선한다」는 주법에 기대를 걸고 주의회를 긴급 소집했다.
온종일 토론한 끝에 주의회는 2백3 대 1백9표로 끝내 계획을 부결시켰다. 개인적으로 70%가 찬성이었던 주의원들은 이 게획을 아쉬워하면서도 지역주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에 반대했다. 뉴햄프셔주 80만주민이 지지한 계획은 이렇게 해서 1천2백여 명 지역주민의 반대로 좌절되고 말았다.
획기적 개발계획이 해당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좌절되는 일은 지자제가 발달한 정치선진국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모양이다. 더럼의 경우도 지자제를 앞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
지자제가 환경보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주민참여가 보장되고 오염방지책임이 명확해지며 오염의 이전이 방지된다는 점이다. 반대로 부정적 영향으로는 무차별개발,지역이기주의,광역환경보전의 소홀 등이 지적되고 있다.
지자제와 관련지어볼 때 낙동강 식수원오염사건이 결과적으로 기여한 부분도 있다. 이 사건은 지자제의 긍정적 효과를 살리도록 지역살림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는 점과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전문성 확보의 필요성을 잘 알게 해주었다.
앞으로 개발이냐 보전이냐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의 결정이며 그 결정은 당연히 삶의 질에 대한 배려와 전문성에 의지한 판단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80만명의 희망이 1천여 명의 의사에 의해 좌절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성장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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