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1주일 동안 밥을 굶고는 살 수 있어도,사흘 동안 물을 안 마신다면 죽게 마련이라고 한다.『물론 본질적으로 불멸이어서 클레오파트라가 목욕한 물은 아직도 세계의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것은 24년 전 「물생명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피터·브리그가 한 말이었다. 그러나 『물이 가장 중요한 국가적 자원으로 돼 가고 있다는 것을 지금 깨닫지 못한다면 멀지 않아 물을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암담한 상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물을 학대하는 자는 누구든 자기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브리그는 딱 잘라 말한다. 『우리 모두가 상류에 살 도리는 없다』고. 더러운 폐수를 피해 깨끗한 상류에 몰릴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버리는 폐수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파멸이 올 것이라는 경고다.
현대인의 생명줄인 수돗물은 이물질을 걸러내는 여과와,염소 소독의 두 단계를 거쳐서 생산된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수돗물이라는 뉴욕의 수돗물은 지금도 걸르지 않고,소독만 하고 있다. 18개의 저수지 수질보호가 그만큼 잘돼 있기 때문이다. 저수지 수질보호지역의 개발을 철저하게 통제하고,하수처리를 빈틈없이 하기 때문이다.
○발등 찍힌 장미빛 공약들
우리 건설부가 거창한 상수도확장건설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금 18일이었다. 10년 동안 3조6천8백46억원을 들여 상수도 보급률을 78%(89년말)에서 90%로 끌어올린다는 장미빛 그림이다.
「정당참여 금지」로 야당들이 입을 다문 지방선거기간중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나게 장미빛 설계도를 발표했었다. 그야말로 정부의 「독무대」였던 셈이다. 상수도확장건설계획도 그런 장미빛 설계도의 하나였다.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생색내서 홍보하는 소위 「선심공약」이다.
충청도와 호남지역에 집중투자하고 전국에 스물다섯 개의 고속도로를 새로 얽어놓겠다는 것은 국토종합개발계획이었다. 또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집중투자하고,경북의 안동·상주지역에 공단을 만들고,포항을 동해안의 중심항구로 만들고,농산물시장 개방 바람에 멍든 제주도에 「감귤연구소」를 만들고,과소비 억제정책으로 아우성인 꽃재배업을 위해서도 10년 동안 3천억원을 투입한다 했다. 또 6년 뒤에는 세계 10대 무역국이 되고,93년부터는 무역흑자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홍수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쏟아져나온 그림 중에 「상수도확장건설계획」이 들어 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 치고는 기가 차는 아이러니였다. 건설부가 장미빛 그림을 내놓기 이틀 전에 이미 대구에서는 「냄새나는 수돗물」로 소동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부는 신나게 장미빛 그림을 발표하다가 발등을 찍힌 꼴이 된 것이었다. 수돗물에 독극물이 들어 있는 줄도 모르고,상수도 보급률을 90%로 끌어올리겠다는 거창한 그림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환경범죄 형사처벌 추세
사실 수돗물 소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재작년인 89년 여름에는 전국이 들끓었다고 할 만큼 상수원 오염시비로 떠들썩했다. 국회에 내놓은 건설부 자료에서 전국의 강물에 흘러드는 폐수가 매일 2백40만톤임이 인정됐고,뒤이어 건설부는 전국 상수도의 대부분이 세균이나 중금속으로 오염돼 있다고 확인해서 발칵 뒤집혔었다.
청와대에서 긴급대책회의가 열리고,전국에 4조원 가까운 돈을 들여 84개의 하수처리장을 만든다는 등의 거창한 계획이 발표됐었다. 그러니까 재작년의 소위 종합대책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낙동강에 페놀이라는 유독물질이 들어갔다고 해서 새삼 또 다른 대책이 나올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제 무슨 말을 국민에게 할 것인가?
무식한 시민이 알아듣기 어려운 무슨 PPM이네,몇백만 톤이네 할 것도 없이 폐수를 단속하고 「깨끗한 식수」를 보장해야 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전국의 강물이 끔찍스런 시궁창이 됐다면 정부가 다짐했던 공약과도 다르고,정부가 해야 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크게 보자면 독이 든 폐수를 흘려보내는 범죄가 관이나 정치와의 「유착」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환경보호의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최근 환경범죄를 벌과금이나 행정조치보다는 형사범으로 다루는 추세에 있다. 물론 환경관계법도 그만큼 강화됐고,연방법원이나 법무부의 법집행도 그런 쪽으로 바뀌고 있다.
10년 뒤 「지상낙원」보다 당장 마실 수 있는 식수공급이 급하다. 「홍보」가 아닌 진짜 「물대책」이 지금 나오지 않는다면 미구에 「물 위기」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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