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계엄해제·총선일정 확정 요구/사우디 체제유지 속 국왕 개혁폭 고민/오만 올해 안 직선 통해 「신의회」 구성키로전쟁의 강진이 한바탕 뒤흔든 페르시아만지역에 민주화 변혁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엄청난 부의 독과점을 이루고 있는 이들 나라의 전근대적 왕정체제에 대해 누적된 민중의 불만이 이번 전쟁으로 인해 벌어진 틈바구니를 비집고 터져나오고 있다.
걸프전을 계기로 증폭된 민주화 요구의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는 페르시아만지역 왕정국가,소위 걸프협력기구(GCC) 소속 6개국의 현황을 살펴본다.
▷쿠웨이트◁
지난 85년 총선에서 급진적 아랍민족주의운동이 부상하자 알·사바 수장이 다음해 의회를 해산,이에 대한 의회부활 촉구 시위가 지난해 초부터 발생했었다.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지난해 8월2일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부패왕정을 타도하기 위한 쿠웨이트 혁명세력의 지원」이란 명분을 내세울만큼 페만지역 중 가장 진보·개방적인 쿠웨이트인들의 민주화 의식은 깨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사태를 치르며 국가안보에 실패한 집권계급에 대한 불신과 이들의 타락상이 낱낱이 폭로되면서 국민들의 체제 변혁 요구는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중순께 사우디 지다에서 열린 망명 국민의회 집회에서 알·사바 수장은 걸프사태 후 민주화 조치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하기게 이르렀다.
그러나 알·사바는 지난 2월26일 쿠웨이트시 탈환과 함께 3개월간의 전국 계엄령을 선포했다. 해방 후 치안부재상황 및 기본적 전후 복구를 위한다는 이유였지만 반왕정 민주세력은 이를 반체제를 탄압하기 위한 양면도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비록 총리인 알·사바 황태자가 지난 6일 『환경이 정비되는대로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거듭 다짐했지만 민주세력은 계엄령의 즉각적인 해제 및 명확한 선거일정 발표 등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결국 알·아와디 내각담당 국무장관은 지난 17일 국민의 반이상인 45만명의 쿠웨이트 피란민이 귀국하는 6개월에서 1년 이내에 민주의회선거실시를 약속했으나 왕정 기득권층과 민주세력간의 지분다툼,좌익으로부터 회교 극우세력에 이르는 민주연합내의 내부갈등 등으로 민주화 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사우디아라비아◁
회교의 「청교도」인 와하비즘에 의해 페만국가 중 가장 폐쇄적 사회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번 사태에서 예외일 수 없다. 오히려 은둔적 성격으로 인해 내부에 미친 충격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우려되고 있어 체체 단속에 시급한 실정이다.
쿠웨이트를 강점한 사담·후세인 대통령은 사우디를 직접 거론하며 부패왕정 타도를 위한 아랍인들의 봉기를 선동했었다. 이런 가운데 파드 사우디 국왕은 지난해 11월 『기초적 의회성격인 자문평의회 설치를 위한 최종 검토에 들어갔다』고 이례적으로 발표,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사태가 진정된 후 파드 국왕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파드 국왕은 지난 5일 회교율법(샤리아)학자들과의 회합에서 『사우디의 형편,사우디 국민의 의무는 다른 나라와 다르다』고 전제,『회교에 반하는 원칙은 채택할 수 없다』는 체제고수 입장을 천명했다. 즉 율법에 기초,국왕을 비롯한 왕족과 서민간의 대화창구인 「마즐라」로 불리는 사우디식 직접 민주제 등 전통지배 구조의 옹호론을 폈다. 그는 『일부 서구가치관에 의해 현 체제를 후진성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이에 개의치 않겠다』고 통박했다.
파드 국왕이 이날 발언에서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안했지만 지금까지의 예에 비춰 이러한 「수위의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사우디 국민들의 민주화개혁 욕구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다.
▷오만◁
아라비아반도 서남단 오지인 오만은 새로 발견한 부의 원천인 석유판매로 조성한 기금을 통해 「오만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걸프위기를 겪으며 오만의 지정학적 위치가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무역의 요충지로 부상하면서 이에 따른 이질문화의 유입에 고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국민의 잠재적 민주화 요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카부스·빈·사이드 국왕은 지난해 11월 즉위 20주년기념연설에서 올해 안으로 국왕에 의해 임명되는 국가자문평의회를 대신한 신의회를 민주선거에 의해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신의회의 역할·기능 등에 대해서는 아직껏 불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형편이다.
▷기타◁
GCC내 카타르(UAE),바레인 등 소국의 처지도 다소 차이는 있으나 민주화요구가 서서히 증대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회교적 가치와 봉건적 요소가 수백년간 이어져온 페만 아랍 왕정국 사이에서 서구적 가치관을 지닌 민주정치제도가 반드시 옳다고 보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구쿠웨이트 시가지를 중심으로 2백년간 성장해온 80만명의 쿠웨이트인들은 서로가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 영 옥스퍼드대 대학원 교육을 받은 한 쿠웨이트 지식인은 알·사바 수장이 부패했더라도 일가의 가장과 같은 존재인 데 욕할 수 만은 없다며 쿠웨이트 민주화의 궁극적 모델은 영국식 입헌군주제가 가장 타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 카타르변호사는 『아랍식의 독자적 의회제(자문평의회)와 국왕·수장 중심 정치체제가 옛부터 자리잡아 오고 있는 데 갑작스런 서구식 민주주의 강요는 반발만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외래문화의 유입·진보적 사상과의 접촉으로 민주화에 눈을 뜨기 시작한 민의의 강도도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그 한 예는 현재 석유자원의 부로 신분상승효과를 누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현 계급적 경직사회 내에서는 아무리 우수한 인력이라도 출신배경이 낮으면 기회와 의욕을 잃게 돼 국가적 비능률이 만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이라도 걸프전이 내부 혁신의 기폭제가 돼야 한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쿠웨이트=윤석민 특파원>쿠웨이트=윤석민>
◇걸프지역 왕정국가들의 현황과 민주화 움직임
●국명(원수):쿠웨이트(알·사바 수장)
●헌법:1962년 제정(정지중)
●의회:국민의회는 86년 7월 혁명으로 해산,90년 6월 잠정적인 국민평의회 선거를 실시했지만 민주화 요구 세력은 보이콧
●민주화 움직임
90년 10월 알·사바 수장이 해방 후 민주화를 약속
3월6일 알·사바 총리(황태자)가 「환경이 정비되면」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약속
3월9일 알·사바 수장이 재차 민주화 촉진을 확인
3월17일 알·아와디 내각담당 국무장관 6개월∼1년 이내 민주의회 선거 실시 다짐
●국명(원수):사우디아라비아(파드 국왕)
●헌법:없음(회교 율법·샤리아)
●의회:없음(왕족회의와 종교회의,부족장회의 등의 의견을 들어 국왕이 정책을 결정)
●민주화 움직임
90년 11월9일자 국내 각 신문이 「자문평의회 설치 최종 검토에 들어갔다」는 파드 국왕의 발언을 보도
3월5일 파드 국왕은 「코란에 따르는 것이 왜 후진적·원시적인 것인가」라고 외부의 민주화 압력에 반발
●국명(원수):오만(카부스·빈·사이드 국왕)
●헌법:없음(회교 율법)
●의회:국왕이 임명한 국가자문평의회. 평의원 55명,입법권은 없음
●민주화 움직임
90년 11월18일 즉위 20주년 기념일 연설에서 국왕은 91년 중 신 의회를 설치하겠다고 약속
2월16일 국왕은 신의회 의원은 59개주의 대표자라고 설명
●국명(원수):바레인(알·할리파 총리)
●헌법:1973년 제정(정지중)
●의회:국민의회는 75년 8월 이후 정지중
●민주화 움직임
90년 12월 할리파 총리가 의회재개를 검토하고 있다고 시사
●국명(원수):카타르(알·타니 수장 겸 총리)
●헌법:1970년 잠정 헌법제정
●의회:총리지명 30명의 자문 평의회. 입법권은 없음
●민주화 움직임:없음
●국명(원수):아랍에미리트(자이드 대통령=아브다비 총리)
●헌법:1971년 잠정 헌법제정
●의회:각 수장이 임명하는 40명의 연방평의회. 입법권은 없음)
●민주화 움직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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