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후기산업사회는 정보사회이다. 신속정확한 핵심정보의 수집과 확보야말로 가열한 경쟁에서 이기고 부와 권력을 만들어내는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컴퓨터의 광범한 활용은 온갖 정보의 소통을 가속화,편리함을 제공하지만 무절제한 정보의 홍수와 노출은 인간이 가장 소중한 기본권과 사생활을 파괴하는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다.지난 20일 검찰에 적발된 채권공갈단사건은 이같은 부작용을 생생히 드러낸 표본적 사건임을 주목해야 한다. 국가가 엄정운용해야 할 국가전산정보관리체계에 구멍이 뚫려 국민 개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기록들이 고스란히 조직범죄단의 손에 넘어가고 있었다니 정말 죄질이 고약하다. 이같은 자료누출로 공갈을 당한 채무자들의 직접피해도 문제이거니와 개인의 사생활권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침해당한 국민들이 입은 간접피해는 실로 엄청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법과 공권력이 지켜줘야 할 궁극적 목표가 국민 개개인의 인간존엄성일진대,그 존엄성을 허술한 정보관리로 짓밟게 한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경찰관들이 범죄조직의 돈을 받고 개인신상자료를 넘겼다니 이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8개 조직에 넘겨준 자료가 무려 15만명분에 이르렀고,시중에서 경찰컴퓨터를 사용하는 값이 1건당 1만원씩이란 소문마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니 정말 아연실색할 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로 지적해야 할 것이 전산정보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국가기관의 근본적인 인식부족이다. 정부는 90년대 중반까지 행정·교육·금융·국방·공안 등의 5대 국가기관 전산망 구축 완료 및 연계사용을 목표하고 있고 이미 대부분이 가동중이다. 그러나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만 지난 86년 제정했을 뿐 빈번한 자료유출사례에도 지금껏 단속이나 처벌은 전무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리소홀 탓인지 벌써부터 국민들은 사생활권 침해에 시달려왔다. 각종 기업과 단체들이 국가전산자료를 무단으로 이용,국민 각계각층에 각종 판촉·선전·회유의 우편물 공세를 펴왔던 것이다.
두 번째 지적되어야 할 것이 「공공기관 전산수록 개인정보보호법」의 조속한 입법과 시행이다.
이번 사건은 국가전산정보의 유출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린 것이어서 지체없는 사생활권보호입법이 그만큼 절실하다. 이같은 입법과 엄격한 시행,그리고 철저한 정보관리체계가 겹쳐질 때 정보사회로 가는 기본질서가 비로소 잡히기 시작할 것이다. 정부당국은 국민들의 사생활과 존엄성 보호에 더 이상 소홀함이 없기를 간곡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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