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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첫 여총리 할레다·지아(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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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첫 여총리 할레다·지아(뉴스메이커)

입력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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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당한 남편 대신 정계입문… 비타협 고수/세계최빈 경제·정치 불안등 앞길 난제 많아회교권에서 부토 파키스탄 전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여성 총리가 된 방글라데시의 베굼·할레다·지아 여사(46)는 총리에 지명된 19일 『지금은 우리의 승리를 기뻐할 때가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시간들에 대비할 때』라고 세계 최빈국의 총리로서의 첫 소감을 밝혔다.

방글라데시가 현재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할레다의 이 같은 소감은 단순한 겸양이 아니다. 인구 1억1천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 1백60달러로 가난뱅이 나라의 대명사가 된 방글라데시는 지난해 12월 민중봉기로 독재자 에르샤드를 축출한 뒤 지난달 27일 자유총선을 실시,정치적 진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때맞춰 발생한 걸프전은 외국의 원조로 지탱해온 이 나라의 경제를 나락의 심연 속으로 빠뜨렸다.

수출은 끊겼으며,쿠웨이트와 이라크 등지에서 일하던 수많은 근로자들이 귀국했고 주요 원조국이었던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전비 조달로 당분간 방글라데시에 원조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황폐화된 경제의 재건뿐만 아니라 할레다 총리가 해결해야 할 어려운 과제는 많다. 우선적인 과제는 총선에서 총 3백석의 의석 중 1백39석을 획득한 할레다의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에 이어 88석을 차지,제2당이 된 아와미 연맹당과의 관계정립문제이다.

할레다의 라이벌관계인 아와미연맹당의 셰이크·하시나·와제드 여사(43)는 할레다의 총리지명을 집요하게 반대해 왔다. 과반수에서 12석이 모자란 BNP는 여성할당의석 30석과 군소정당의 지지를 끌어모아 할레다 총리지명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지만 에르샤드 전 대통령의 실각을 가져오기까지 공동전선을 펴온 양대 여성지도자의 불화는 방글라데시 민주화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의 반목이 심화될 경우 일단 뒷전으로 물러선 군부가 또다시 전면으로 나설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할레다 총리는 75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81년 암살된 남편 지아우르·라만 전 대통령의 후광을 배경으로 정치에 입문했다는 점에서 코라손·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 비견되고 있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까지만 해도 정치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공식석상에조차 모습을 드러내길 꺼려했던 그녀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82년 남편이 이끌던 BNP에 입당하면서부터. 할레다는 82년 역시 쿠데타로 집권한 에르샤드 전 대통령으로부터 부통령직을 제의받기도 했지만 이를 일축하고 80년대 내내 에르샤드 축출에 온 정력을 기울여왔다.

그녀는 에르샤드가 남편의 암살에 깊이 관여되었다고 굳게 믿었으며 이 때문에 86년 아와미 연맹당과는 달리 총선에 참여하지 않는 등 철저한 비타협 노선을 견지해 왔다. 이번 총선에서 방글라데시 초대대통령인 무지부르·라만 전 대통령의 딸인 하시나를 물리친 것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매너를 보여준 그녀의 개인적 매력도 한 요인이지만 「에르샤드와의 타협은 결코 없다」라는 비타협노선을 견지한 것이 점수를 얻었던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총리가 된 할레다 여사가 먼저 처리해야 할 문제는 현행 대통령제의 존속여부이다.

할레다는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으나 아와미 연맹당은 의원내각제를 주장하고 있다.

만일 대통령제가 존속될 경우 그녀는 또 6월 대통령선거에서 축출된 에르샤드,하시나와 함께 또 한 번의 숙명적인 대결을 벌여야 할지 모른다.<유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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