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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정치」가 중요하다/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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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정치」가 중요하다/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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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제 참의미 새겨 무관심 버려야31년 만에 치르는 기초의회의원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지나치게 냉랭해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선거무관심은 도시일수록 심해서,아예 대도시의 경우 많은 유권자가 자기 선거구에서 어떤 후보자가 나왔는지 알아 보려고 조차 않는 분위기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선거법 규제가 너무 심해 선거분위기가 지나치게 위축된 데도 원인이 있겠으나 일차적으로 유권자들의 뿌리깊은 정치불신에서 연유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밖에도 여기에는 전국수준의 「큰 정치」에만 길들여져 시·군·구의 「작은정치」를 하찮게 여기는 유권자들의 이른바 거대편집증이 한몫 단단히 거들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특히 대도시에 사는 중산층의 경우 「동네 사랑방」쯤으로 보이는 기초의회에 누가 당선되면 어떠랴 하는 편이한,아니 무책임한 생각을 얼마간 하고 있을 성 싶다. 따라서 이러한 선거무관심은 우리의 생활의식의 투영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마음 속에는 큰 것만 찾는 심성이 크게 자리잡았다. 제일많고,제일 높고,여하튼 제일 어찌어찌해야 직성이 풀린다. 큰 것에 광분하다 보니 작은 것은 도시 심에 차지 않는다. 나라는 작지만 이미 고속산업화를 경험했고 초대형 초과밀 도시에 살며 이미 올림픽까지 치른 나라에 사는 이들은 이제 작고 일상적인 것,쉽게 접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가까운 사물,현상들을 낮게 평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몸에 배어 버렸다.

대학교도 종합대학교가 아니면 안 되며,아파트도 승용차도 클수록 좋고 큰 회사에 다녀야 명함이라도 제대로 내 놓을 수 있다. 60,70년대 이른바 개발년대에 심어진 굴절된 발전심리인성 싶은데,우리 국호가 대한민국인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거대편집증의 역사는 좀더 거슬러 올라가야 될 듯하다.

우리가 정말 기초의회는 별 게 아니고 광역의회쯤 되어야 관심을 쓸만 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방자치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이론의 기초를 다졌던 루소,밀 등 고전적 참여민주주의자들은,한결같이 보다 작은 규모에서 자치의 기초를 학습해야 하며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보통선거권이나 전국수준의 정치참여도 실효성이 없음을 강조했다.

즉 참여의 진정한 교육적 효과를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곳이 바로 지방수준,그것도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세계인 기초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제껏 전국수준의 정치에만 익숙해 온 우리들은 따지고 보면 거꾸로 달려 온 셈이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강조하는 산업민주주의 시각 또한 지방자치에 대한 위의 생각과 그 바탕을 같이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산업조직 속에서 보내며 예종만을 일삼는 노동자에게 있어 전국수준의 선거나 추상적인 정치쟁점이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전국수준의 「큰 정치」 못지 않게 우리 생활에 밀접한 「작은정치」,즉 자기가 속한 지역사회와 조직사회를 보다 민주적으로 가꾸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작은 공동체,분권화,참여,그리고 인간주의의 차원으로 거대조직,집권화,물질주의로 치달아온 우리 사회의 주된 물결과는 반대되는 경향인 것이다. 따라서 지방자치의 성공을 위해서는 역시 발상의 대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번 기초의회선거는 지자제선거의 출발점이다. 그것이 어떻게 치러지느냐는 뒤를 잇는 일련의 지자제선거를 위해 원형적인 의미를 갖게 될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선거가 좋은 전범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되며,특히 이는 정치의식이 높다는 도시 중산층의 선거행태에 의존하는 바 크다. 대체로 이들은 인지적 측면에서는 높은 정치수준을 시현하나 실천적 측면에서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많은 이들은 예비선량들의 면모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찍을 사람」이 없다고 푸념한다. 선거법이 과열방지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입후보자들이 자신을 알릴 기회를 제대로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이나,이번에는 유권자들이 쓸만한 사람이 누군가 찾아 나서기라도 해야 할 때다.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없으면,나온 이 중 보다 나은 사람을 열심히 고르는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관심과 정성이 앞으로 지자제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이다. 첫 단추를 바로 끼우는 데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작은 정치」가 보다 아름답게 가꿔 질 때,우리의 민주주의는 보다 풍성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른바 메걸로메이니아,즉 거대편집중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생활의식부터 결연하게 쇄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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