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직접 걸려있는 「5·8조치」(재벌소유 비업무용 부동산매각처분명령)와 주력기업선정요구에 전례없이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그 반발이 통치권력 앞에서 순종으로 일관했던 과거의 관행으로 봐서는 대담하기까지 한 것이어서 재벌의 위상변화에 새삼 놀라움을 갖게 한다. 한국경제의 성장은 근로자,기업,정부의 삼위일체에 의해 이루어졌다. 분명히 기업 특히 재벌들의 기여를 간과할 수 없다는 데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재벌들도 경제발전의 주역의 하나로서 정부의 경제정책에 자신들의 주장을 내놓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언제까지나 권력 앞에 침묵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들의 주의·주장에는 기회있을 때마다 입에 올리는 광의의 공익,즉 국가나 국민의 이익이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우리의 재벌들이 현재 「5·8조치」나 주력업체 선정에 소송제기나 반대성명의 형태로 반발을 나타내는 것은 공익보다는 전적으로 사익을 우선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재벌들의 반론에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다 해도 성원을 보낼 수 없는 것이다. 금호그룹 계열의 광주고속은 지난 4일 건설중인 경기도 용인군 소재 골프장 부지(70여 만 평)에 대한 정부의 비업무용 판정에 불복,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을 상대로 서울민사지법에 판정번복과 제재철회요구소송을 제기했다.
5·8조치에 계속 불복을 보이고 있는 현대(테헤란로 사옥부지 3천9백평),한진(제주목장용지 3백90만평),롯데(잠실 제2롯데월드 부지 2만6천평) 그룹들이 광주고속의 소송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광주고속의 소송은 문제의 부동산처리불복에 따라 여신관리규정에 의거,추가로 물게 된 13억원의 이자부담을 취소해 달라는 것이다. 여신관리 규정의 합법성 여부가 쟁점이 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실시돼온 정부의 여신관리규정은 법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금융통화위원회의 규정에 바탕한 것이다. 광주고속은 우리나라 금융정책의 대도구 그 자체의 정당성 여부에 도전한 것이다. 광주고속의 제소가 승산을 내다보고 한 것인지,아니면 단순히 시간을 벌자는 계산인지 알 수는 없다.
그들의 최선의 이익이라는 판단에서 제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익은 재벌기업들의 비업무용 토지투기를 억제하겠다는 5·8조치의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재벌기업의 재산권 유지,행사도 공익에 우선할 순 없다. 특히 한국처럼 재벌기업이 특혜와 특권을 누리는 환경에서는 재벌기업에게 도덕성이나 부의 사회환원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토지·주택 등 부동산투기는 한국경제의 안정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 재벌기업들의 5·8조치에 대한 반발은 철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들의 소아적 도전은 과거의 관행으로 보아 통치력에 대한 도전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또한 정경협력체제가 붕괴,주력업종의 육성 등 국가적 경제정책 및 전략에도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재벌의 목청이 높기에는 아직 도덕성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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