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반발땐 주력업 완화도 철회” 경고/정부/철폐요구속 동일업합병등 대응추진/재계정부의 업종 전문화 방침에 재계가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서 업종 전문화와 연계된 새로운 여신관리제도의 도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금융제재의 완화에 대해 재계가 반발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인 반면,재계는 2∼3개 주력업체를 선정하여 인위적인 업종 전문화를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방침을 강행할 뜻을 비추고 있고 재계도 추진상황을 봐가면서 동일 업종의 통폐합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경제기획원 관계자들은 재계가 주력업체 선정에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기획원은 재무부가 당초 제안한 개편방향대로 관리대상그룹 수를 현행 49개에서 상위 10개로 대폭 줄일경우 여신규제제도 도입의 근본 취지인 금융독점·경제력 집중완화가 퇴색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주력업체에 대해 여신규제를 무한정 풀어버릴 경우 계열사간 자금이동을 완벽하게 추적할 장치를 마련치 못한 상황에선 여신규제의 실익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사정을 감안,기획원은 30대 계열에 대한 규제는 계속하되 주력업체 2∼3개를 재계가 자율적으로 제시해오면 해당기업은 경쟁력 강화차원에서 금융제한을 없애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기획원 고위관계자는 『금융 독점 폐해가 여전히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기존장치를 유지하면서 주력업체에 한해 규제를 완화,경쟁력 보완에 도움을 주려는 취지』라고 밝히고 있다.
이 관계자는 재계가 주력업체 선정에 난색을 보이는 움직임에 언급,『정부가 강제적으로 주력업체를 지정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반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재계가 만약 「말타니까 경마잡히고 싶다」는 식으로 여신규제장치 자체를 모두 없애라고 요구해온다면 부득이 정부로서는 주력업체에 대한 선별완화마저 철회,원점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재계는 정부의 여신관리제도 개편에 의한 업종 전문화 유도에 원칙적으로 반발하면서도 계열사간 연관성이 많은 동일업종의 통폐합을 추진하는 등 대처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재계의 대변단체인 전경련은 지난주 초 열린 회장단 회의에서 『업종간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업종 전문화 방침에 정면 반발,여신관리제도 자체의 철폐를 요구했다.
재계가 이처럼 업종 전문화 방침에 반발하고 있는 것은 「40여 개 계열사 중에서 2∼3개 주력업체를 선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으로 요약된다. 그 이유로는 ▲자금지원 만으론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기 어려울 뿐더러 ▲새로운 유망산업이 속속 등장하는 현실에 비춰 주력업체의 선정이 기업의 변신가능성에 장애요인이 되고 ▲대기업들이 앞 다투어 전자·자동차·석유 화학 등을 주력업체로 선정할 경우 국내산업이 특정분야에 편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최근 소련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계열사 기업 하나하나가 독립된 주력기업이기 때문에 따로 주력업체 선정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겉으로는 반발하면서도 속으로는 정부의 업종전문화 추진에 대처하기 위해 나름대로 계열사간의 흡수 합병,또는 중복된 동일업무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럭키금성 그룹은 전자와 석유화학부문의 흡수합병을 추진,금성전기와 금성통신을 흡수 합병하고 (주)럭키·럭키유화·럭키소재 등의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 또 대우그룹은 대우전자와 대우통신의 컴퓨터 부문을 대우통신으로 일원화하고 대우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도 검토하고 있다.
한국화약 그룹도 경인에너지와 한양화학의 합병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재계는 무리한 기업합병이 속출,기업경영에 커다란 혼란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정부관계자는 앞으로 여신관리제도가 30대 재벌을 대상으로하고 주력업체는 2∼3개씩 관리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을 골격으로 이달말까지 구체적 윤곽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금 대상에 대한 조정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오히려 이번 여신관리제도의 개편에 대해 일반 여론이 비판의 화살을 퍼붓는 것은 「일반론」이라는 차원에서 수긍이 가지만 재벌 자신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입장이다.
국내 상품의 경쟁력이 해외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갈수록 외국상품이 밀려들어 오고 있는 국내시장에서도 약화되고 있는 등 상황이 급박한 마당에 국내 경제의 주요 주체인 대기업이 너무 현실 안주적이고 현상 유지적인 발상을 하는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기업의 여러 부문 중 비교우위가 있는 특정부문에 집중투자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번 여신관리 개편은 반드시 관철될 것이라고 관계자는 말하고 있다.<김주언·홍선근 기자>김주언·홍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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