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식아동에 따뜻한 점심 3년/“굶는 학생”에 충격… 88년 시작/인근 돈암국교 50여명 거쳐가/“학교가는일 즐거워요”매일 낮 12시30분 서울 돈암국민학교의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한 무리의 개구쟁이들이 교문을 빠져나와 인근 야트막한 한옥으로 줄달음친다. 『할머니』하고 부르며 요란하게 집안으로 뛰어드는 어린이들 앞에는 어김없이 따뜻하고 맛있는 점심과 최복순 할머니(69·서울 성북구 동소문동4가 207)의 다정한 미소가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점심시간이면 친구들 눈을 피해 운동장 한 구석에 잔뜩 풀이 죽어 앉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최 할머니와 점심을 함께 먹으며 웃고 떠드는 이들의 얼굴은 티 한점없이 맑고 밝다.
최 할머니가 돈암국민학교의 결식아동들에게 매일 따뜻한 점심을 먹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88년 2학기 개학때부터.
인근 성당에서 우연히 한 학부형으로부터 『요즘도 밥을 굶는 국민학생이 있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최씨는 아들들과 의논한 끝에 돈암국민학교가 집에서 불과 50여 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만큼 아예 집에서 이들의 점심을 해먹이기로 했다.
최씨의 얘기를 들은 당시 이수한 교장(64)은 『할머니의 뜻이 너무나 고맙다』며 우선 12명의 결식아동을 찾아 소개해 주었다.
이후 학기마다 10여 명씩에게 점심을 차려주어 지금까지 50여 명이 최씨 집을 거쳐 갔으며 이번 학기에는 4명을 졸업시켜 5명만 남아 있으나 곧 더 소개를 받아 10명 정도를 받을 예정이다.
최씨가 어린이들에게 쏟는 정성은 각별하다. 매일 아침 시장에 나가 좀더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반찬감을 고르느라 몇 시간씩 헤매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책방에 들러 좋은 책을 골라 선물하기도 한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최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는 좋은 만화책을 구하기 위해 직접 출판사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돈암국민학교 김영순 교사(40·여)는 『결식아동들이 전에는 도시락조차 못싸오는 가난이 창피해 결석하는 일이 잦았으나 할머니집에서 점심을 먹게된 이후로는 결석하는 일이 없어진 것은 물론 성격도 명랑해지고 성적도 크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한 어린이는 아침부터 『할머니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는 시간을 기다린다』며 『이제는 학교가는 일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결식아동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일 말고도 최씨의 생활은 늘 남을 돕는 일로 가득차 있다.
매년 연말에는 전북 이리의 양로원을 찾아 1백50만원씩을 전하고 있으며 지난 1월에도 주민들을 설득해 헌옷을 모아 한 트럭분을 충북 음성 꽃동네에 전달하기도 했다. 성당의 신자들과 함께 환자들을 찾아 간병하고 경조사의 치다꺼리를 도맡아 한다.
주유소를 경영하던 남편이 3년 전 고혈압으로 세상을 뜬 뒤 일을 이어 맡은 3남 임명선씨(39) 부부와 함께 낡은 한옥에 살고 있는 최씨는 한 겨울에도 자신의 방에 간신히 온기만을 유지하게 할만큼 스스로의 생활은 엄격하고 검소하기 이를 데 없다.
최씨가 결식아동들의 점심을 먹이는 이야기는 이웃들도 전혀 모르고 있다. 『바깥에 알려지면 아이들이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칫 상처를 줄지 모른다』며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극구 사양해온 최씨는 『굳이 쓰려거든 아직도 결식아동 등 상상키 힘든 어려운 형편의 이웃들이 많다는 얘기를 강조해 달라』고 당부했다.<김광덕 기자>김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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