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전환점에 서 있다. 안일한 정체를 택할 것인가,아니면 도전적인 성장을 택할 것인가. 우리나라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온 기업 특히 재벌기업의 자세가 중요하다.지금 한국경제는 대외경쟁력에서 한계에 부딪쳤다. 국민총생산액(GNP)의 수출입 의존도가 약70%나 되는 여건에서 수출이 생명력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불행히도 88년 올림픽 이후 이 자명한 사실이 재계·정계 등 국민 각계각층에 의해 외면됐다. 재계는 고임금·제품개발의 낙후·수입규제의 강화 등으로 수출여건이 나빠지고 채산성이 악화됨에 따라 수출보다는 수입으로 방향타를 바꿨다. 뿐만이 아니다. 외국기업들과의 피나는 혈투보다는 손바닥 뒤집듯 손쉽게 수백억·수천억 원을 버는 「물타기」 「뻥튀기」 등 재테크와 부동산투기에 탐익했다.활력 잃은 수출도 미국·일본·EC(유럽동동체)등 세계의 주시장에서는 대결을 회피했다. 정부의 북방정책에 편승,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막 시도하고 있는 소련·중국·동구 등 사회주의 진영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돈이 없고 시장경제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이 지역에서 돌파구를 탐색하는 것 자체가 오류다. 이러한 시행착오 끝에 남은 것은 인플레,국제수지적자다.
또한 엄청난 주택·토지 등 부동산의 폭등과 빈부의 격차는 사회적인 안정을 황폐화시켰다. 한국이 살 길은 여전히 수출에 있다. 수출은 제조업 경쟁력의 재창출 여부에 성패가 걸려 있다. 경제기획원의 주도 아래 정부가 마련,14일 발표된 「제조업경쟁력강화대책」은 뒤늦은 감이 있으나 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대책이 성공하려면 재벌기업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어야 한다. 재벌들은 이제 정부정책에 대한 그들의 「순종」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있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정부가 제조업강화대책의 일환으로 제시한 여신관리제도 개편안 중 주력업체의 선정문제다. 정부는 여신관리대상을 현재처럼 30대 계열그룹으로 하되 계열별로 2,3개의 주력업체를 선정하고 주력업체의 대출금은 여신관리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재벌그룹의 주력업체에 적어도 법률적으로 무제한 금융지원의 길을 터줌으로써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것이 취지다.
그러나 문어발식으로 20∼30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모함」체제의 재벌그룹들은 본질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이들은 전경련을 통해 거부의사를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손가락처럼 어느 하나도 자를 수 없다는 것이다. 주력업체 지정요구를 심지어 「인위적인 재벌해체」로까지 보는 극단론도 대두되고 있다. 이들은 여신관리제도 자체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의 쟁점은 비업무용 부동산처리에 대한 저항이다. 롯데호텔·한진·대성탄좌 등은 처분 명령을 받은 그들 계열기업보유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각치 않을 것을 분명히했다. 이들은 규제대상인 은행융자금을 상환했거나 하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은 졸부성집단 이기심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경제로부터 저지받고 후발국경제로부터 추적당하는 한국경제는 재벌들의 세계를 향한 앙트레프리너십(기업가정신)을 필요로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