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 기초의회선거가 예상 외의 냉담 속에서도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간 가운데 김영삼 김대중 두 김씨의 대권을 겨냥한 활동이 구체성을 띠어가고 있다. 김 민자 대표는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여권의 대권주자 결정요구로 풀이되는 전당대회 조기소집 논의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김 평민 총재는 많은 궤도 수정을 가하긴 했지만 선거 지원형태의 장외공세를 시작했다. 두 김씨의 행보는 기초의회선거차원이 아니라 92년의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김영삼 대표,조기전당대회 요구/“대세 밀리기 전 선제공세로 승부”/민정·공화계 「경선 역공」 앞당길 듯… 「합당과제」 결말 길로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14일 오랜 침묵을 깨고 민주계가 요구해온 조기전당대회와 관련,자신의 의중을 처음으로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김 대표의 이날 발언이 대권 후보구도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당대회가 당헌상 내년 5월로 명시돼 있는데도 조기소집 불가가 아니라 「지자제 광역의회선거 후 논의가능」으로 제시함으로써 당내 각 계파에 크나큰 파장을 던지고 있다.
특히 당내의 가장 민감한 현안을 기초의회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에서 자신의 5월 방미 계획등과 함께 언급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김 대표 나름의 치밀한 계산과 속사정이 깔려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우선 뇌물외유사건 이후 동료의 움직임이 부쩍 심해진 민주계의 기류를 감안할 때 그들의 조기전당대회 소집요구를 부분적이나마 수용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김 대표의 측근을 제외한 민주계 의원들은 최근 삼삼오오 모임을 갖고 자신들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함께 집단행동의 목소리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표의 이례적인 발언을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적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민주계의 이완분위기를 디딤돌로 삼아 대권 후보구도를 조기 확정하려는 적극적 포석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광역의회선거 후 필연적으로 예상되는 민정·공화계의 정치공세에 말려 무한정 시간을 끌 경우 김 대표의 대권 후보의 길은 점차 멀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민주계에서는 팽배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김 대표는 광역의회선거 후의 정치일정을 사전에 제시,대권 후보를 둘러싼 당내 파워게임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첫 수순을 시작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김 대표측은 『늦어도 올 정기국회까지는 가시적인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 대표와 민주계의 이같은 동향에 대해 민정·공화계는 표면적으로는 『소수의 발상』이라며 일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당내에서는 광역의회선거가 끝난 뒤인 7·8월께가 되면 민주계측의 조기전당대회 공세가 노골적으로 거세질 것을 이미 예상해왔고,민정·공화계는 이에 따라 최근 민주계 의원들의 잦은 모임을 예의주시해온 것이 사실.
따라서 민정·공화계는 이날 김 대표의 발언으로 조기전당대회를 둘러싼 당내의 갈등기류가 「조기부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말하자면 민정·공화계는 차기 대권을 둘러싸고 김 대표의 민주계와 한판승부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해왔으나,이날 김대표의 발언으로 기습선제공격을 당했다고 느끼고 있는 것. 따라서 민정·공화계 역시 차기 대권 후보의 철저한 경선요구 등의 역공을 앞당겨 취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각 계파간의 이해가 이같이 엇갈리고 있는 현실인만큼 조기전당대회 개최가능성을 점치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5월 전당대회를 규정한 당헌상 조기소집하자면 임시전당대회가 돼야 하고 이 경우 총재 또는 대의원 3분의2 이상의 요구가 있어야 하므로 김 대표나 민주계의 희망만으로 성사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김 대표와 민주계가 강력하게 요구하게 되면 그에 반대하는 민정·공화계와 엄청난 갈등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결말은 계파간의 전면대결차원이 아니라 의원내각제 합의각서 파문에서 보듯 노 대통령과 김 대표의 「담판」으로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본다면 합당 때부터 잉태된 민자당의 근원적인 과제는 어떤 형태로는 결말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김종래 기자>김종래>
◎김대중 총재,전국순회집회 돌입/「고정팬」 동요 막고 「기초」 위축방지… 「세 불리」타개에 역점/광역 겨냥… 지역감정 완화 큰 비중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14일 성남과 수원의 단합대회 참석을 시작으로 지자제 기초의회선거를 우선 겨냥하는 장외 지원공세를 시작했다.
김 총재는 원래 지난 9일 보라매공원의 수서규탄대회를 발판삼아 전국을 누비는 30여 회의 본격적인 장외공세를 계획했으나 대회형식을 수서규탄 옥외집회에서 옥내의 당원단합대회로 바꾸고 횟수를 13∼14차례로 줄이는 등 궤도 수정을 했던 것.
김 총재가 지자제 실시 자체에 대해 자신과 평민당이 각고의 노력 끝에 이를 얻어냈다고 주장하며 엄청난 집착을 보여왔음을 감안하면 제한된 행보를 하는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김 총재는 정당의 선거관여를 보는 부정적 시선과 장외공세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광역의회선거와 14대 총선,그리고 나아가서는 14대 대통령선거까지를 염두에 둔 발걸음을 멈출 태세가 아니다.
이번의 기초의회선거에 수수방관하고 있으면 정당공천이 허용되는 광역의회선거와 자치단체장선거 때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김 총재가 구상하고 있는 대권구도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또 계획했던 지방순회를 아예 취소할 경우 고정지지자들의 동요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당내에서 제기되었고 정부·여당의 「엄격한」 선거태도로 위축일로에 있는 선거분위기를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김 총재와 평민당이 처음의 공언과는 달리 이번 선거에서 크게 발을 빼고 있는 것도 사실.
평민당 주장대로라면 평민당 성향의 후보가 전국에서 1천5백24명이고 이들이 모두 당선된다 해도 의원정수의 35%선에 불과하다. 결국 30%선 확보가 매우 어렵다는 계산이 그리 어렵지 않다.
당 일각에서 투자효용성에 비춰 이번 선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평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기초의회선거에 임하는 전략이 많이 수정되고 있다』고 말해 이를 시인하고 있다.
김 총재는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이번 선거에서는 최소한의 투자로 현상유지를 노린 뒤 6월의 광역의회선거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려 할 것 같다.
벌써부터 시선을 광역의회선거로 돌려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에게 직접 출마를 권유하고 영남·충청·강원지역 등 취약지구에 대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서울과 수도권 장악이 승부의 관건이라고 보고 후보공천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일 예정이다.
김 총재의 움직임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는 자신의 정치적 장래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지역감정을 어떻게 누그러뜨리느냐 하는 문제이다.
김 총재는 이번 순회일정에서 일부러 호남지방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반면에 경남 울산을 포함시켰다.
○…김 총재와 평민당의 선거전략 수정에 대해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비판과 함께 「세 불리」를 느낀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평민당은 보라매대회를 폭설이 내리는 등의 날씨와 주변여건을 감안하면 성공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보라매대회의 차질이 전략수정의 근본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또 대규모 옥외집회 등의 장외공세가 현재의 국민감정과 일치하느냐 하는 문제제기도 있다.
그러나 김 총재가 자신의 정치적 장래에 대해 불굴의 집념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여러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키 어려운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김 총재는 현정권이 지나치게 공안파 등으로 지칭되는 강경세력에 의지할 경우 불행한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김 총재의 대응방안은 92년의 대권고지를 염두에 두는 가운데 이번 선거가 끝나는 4월부터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이병규 기자>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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