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정치적 긴장이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키예프 등 전국 각 도시에서의 군중시위로 확대되고 있다. 표면상 이번 군중시위는 오는 17일 실시될 예정으로 있는 연방제 존속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 반대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지난해 연말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사임으로 표면화된 보수개혁파 대결이 막바지에 왔음을 뜻하는 움직임이다.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그 동안 법적으로는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를 권력구조 개편으로 뒷받침하고,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사임 이후 개각과 국가안보위원회 구성을 통해 보수편향을 분명히 해왔다. 3년째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경제와 사회적 불안을 보수적인 권력강화로 넘기자는 계산임이 확실하다. 사실상 보수파와 개혁파가 팽팽히 맞서있는 상황속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정부는 「연방」문제를 최대의 정치적 디딤돌로 이용하는 듯한 인상이다. 그는 17일 국민투표에서 「연방제 존속」의 대권을 유권자로부터 얻어낸다면 경제에 관한 비상대권을 포함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태세가 마무리되는 셈이다.
지금까지 소련에서는 89년과 90년 두 차례의 선거에서 개혁파가 국민으로부터 상당히 큰 지지와 호응을 얻었었다. 17일의 국민투표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얼마만한 지지를 얻을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연방존속」이라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승리를 내다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국민투표에 앞서 고르바초프는 공화국에 자원관리나 외교에 있어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는 새로운 연방조약 초안을 내놨다. 이 초안에 대해서는 발트 3국 등 6개 공화국이 반대하고 있고,러시아공화국도 수세권이나 자원소유권 문제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인 옐친이 대표하는 개혁파로서는 연방조약 자체보다,국민투표 이후에 올 본격적인 국내정치의 보수회귀 가능성에 위기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개혁·개방으로 시작해서 보수로 돌고 있는 고르바초프 체제는 한마디로 말해서 보수·개혁의 연립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소련이 정치적 파탄없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시 개혁·보수의 슬기로운 타협이 유지돼야 할 것이다. 한국도 고르바초프 체제에 30억달러의 힘겨운 경제적 짐을 나누어 지고,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치적 명분을 걸고 있다. 개혁파의 입장을 지지하는 대중시위의 정치적 의미를 고르바초프 정부가 충분히 파악해서 전면대결에 이르기 전에 정치적 긴장이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싶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