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여신한도(바스켓) 관리대상을 30대 계열기업군에서 10대 계열기업군으로 줄이려던 당초의 방침은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금융지원의 효율화를 기하자는 데 있었다.경제의 국제화·개방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기업이라고 무작정 여신한도를 묶어 놓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또 여신관리제도의 지나친 획일성 내지는 경직성이 여러 가지 폐단을 낳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터여서 일단 여신관리제도의 개편 자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현행의 여신관리운용방식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므로 이러한 허점의 보완없이 완화 쪽으로만 정책을 돌린다면 지나치게 대기업을 두둔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며 대기업에 대한 또다른 금융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현행의 바스켓 방식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계열기업군에 대한 여신편중이 경제·사회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총량규제의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마련된 이 제도는 그 동안의 운영을 통해 나름대로 성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30대 계열기업군의 여신비중이 88년의 23.25%에서 89년엔 18.29%,90년엔 16.81%로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의 여신비중이 주는 대신 이들의 제2금융권과 외국은행지점을 통한 대출자금은 현저히 늘어나서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자금편중에는 그다지 큰 변함이 없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신관리제도에서 제외되는 특별외화대출,연불수출금융,산업합리화 대출,국외지점 대출 등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여신관리제도의 허점을 말해 주는 증거라고 하겠으며 부동산투기억제를 위한 제어장치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것도 허점 중의 하나라고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바스켓에서 11∼30대 계열기업이 풀려나도 중소기업한테 돌아갈 자금지원에는 지장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로 중소기업지원의 상대적 위축이 없으라는 보장이 없는데다가 효율적인 자금관리의 어려움 등으로 경제력 집중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러한 제도적인 허점이 시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여신관리규제가 완화된다면 대기업들이 부담하고 있는 제2금융권의 비싼 금리 대신 싼 은행돈을 빌려주기 위한 조치라는 의심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8일의 경제장관회의가 당초의 재무부 안을 후퇴시켜 관리대상을 현재처럼 30대 그룹으로 유지하는 방향수정을 한 것도 계열별 전문화업종 지정상의 어려움과 앞에 지적한 여러 허점들의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결론 끝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부가 만약 여신규제에 물꼬를 트려면 먼저 대기업에 의한 부동산투기,문어발식 기업확장에 쐐기를 박는 확고한 대책수립부터 선행시켜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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