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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왕정국가 「친미」 가속화 전망(걸프전후의 중동·세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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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왕정국가 「친미」 가속화 전망(걸프전후의 중동·세계:8)

입력
1991.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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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아랍」 이상 불과 인식/실리적 정치 앞세울듯/민주화 불길·회교 혁명세력 불만이 변수걸프전쟁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러낸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걸프왕정국가군 사이에서는 아랍민족주의에 대한 회의가 일고 있다. 그리고 가공할 파괴력으로 단기간에 이라크를 굴복시킨 미 영 등 서방의 위력에 찬탄과 함께 외경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동시에 서방의 영향력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는 의지와는 달리 불가항력적으로 빨려드는 무력감조차 느끼고 있다.

걸프왕정국 사이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얻은 분명한 교훈은 「누가 친구이며 누가 적인가」를 명백히 깨달은 사실이다. 즉 아랍민족주의란 각자의 편의적 해석에 따라 자국이기주의의 가면이 될 수 있다는 허구성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우디 공보부 관리는 『범아랍민족이니 아랍공영권(움마)은 단지 이상에 불과하고 지금은 오직 국익을 좇는 실용적 현실정치 감각을 내세울 때』라고 강조했다.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밝힌 명분 가운데 아랍권 부의 재분배 문제도 걸프왕정국들로서는 가당치 않은 얘기다. 석유수입을 바탕으로 가난한 아랍 형제국에 대한 경제원조·투자로 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해 힘써온 게 누구냐는 반문이다. 쿠웨이트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최대 재정후원자 였다는 게 그 한 예이다.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소말리아인 바레씨(28)는 『소말리아 지도자들이 굳이 아랍권이라 주장하는 것은 순전히 경제적 원조 때문』이라며 자신은 아랍인이 아닌 아프리카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걸프왕정국들이 팔레스타인문제를 보는 시각도 여타 아랍국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문제를 하나의 문제로 연계시키기보다는 서로 개별적 사안으로 파악하고 있다. 나라를 잃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물질적 심정적 지원을 보내나 이들이 항상 사회의 불안을 야기할 「불안정세력」으로 무마와 경계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혐오는 대단하지만 이는 메카·메디나 다음의 중요한 회교성지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는데 기인한다. 더욱이 「적의 적은 친구」라는 아랍 속담처럼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공격에 자제를 보여준 이스라엘에 대해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신문의 논조가 주류를 이루었고 나라를 잃었던 쿠웨이트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심정적 연대감마저 노골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쿠웨이트인들은 안보면에서 이스라엘처럼 지역 강국이 될 것으로 생각지는 않는다. 전전 인구가 2백20만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쿠웨이트인은 불과 40%인 80여 만 명이며 나머지는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타 아랍계와 아시아계 노동력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쿠웨이트·비쿠웨이트인 간의 상하적 인적구성은 산업구조 뿐 아니라 자체 방위력 면에서도 취약성으로 지적되고 있다. GCC 리더국인 사우디의 경우도 1천3백만 거주인구 중 사우디 종족인 베드윈은 절반에 불과한 실정이며 바레인(인구 50만명) 카타르(35만) 아랍에미리트연합(UAE·1백50만) 오만(2백만) 등 왕정국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다. 군병력 3천명 미만인 바레인은 아프가니스탄 반정게릴라 무자헤딘을 용병으로 GCC 연합군에 파견해야 했을 정도이다.

군조직마저 서로 경쟁적 토착봉건세력을 배경으로 사병성격인 국가수비대·국군 등으로 갈라져 서로 알력이 심한 실정이다.

걸프사태를 계기로 자위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고조되고 있지만 왕정이란 전제적 지배형태의 유지를 위해서는 강력한 군부의 등장을 견재해야 한다는 위기의식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쉽사리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일부 집권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치도의상 비록 후세인식 민족사회주의체제라 할지라도 전근대적 왕정보다는 한단계 발전된 모델이며 결국 국가의 근대화과정에서 이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이 폭넓게 형성 돼 있다. 특히 해방된 쿠웨이트에서는 국가안보에 실패한 집권층에 대한 불만이 고조,이미 민주화요구의 불길이 댕겨진 상태다.

게다가 아랍민족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범아랍 통합파 회교근본주의자들의 불만은 언제라도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점에서 사태 후 아랍권 신질서 구조개편 작업에서 논의되고 있는 GCC와 군사강국인 이집트 시리아 등이 참여하는 미 주도의 집단 안보체제는 대내외적 압력에 직면한 왕정국가로서는 표면상 꺼리는 듯 하지만 내심 가장 적절한 안정장치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걸프산유국들은 다원적 목소리를 낼 우려가 있는 어떤 형태의 정권보다 단일 목소리의 왕정이 미국의 선택이라는 신호를 분명히 받은 셈이다. 또한 자신들의 무게로 미국을 움직여 중동의 아킬레스건인 이스라엘마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을 실증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친미·친서방정책은 더욱 가속화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단지 서로 체제와 국익을 달리하는 집단안보체제에 구성원 사이에 뚜렷한 공동의 적이 없다는 사실이 장래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또한 서방세력을 엎고 부의 독점을 이룬 신데렐라와 같은 왕정국가에 대한 주변 아랍권의 질시를 치유할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중동의 역학구조는 두고두고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다란=윤석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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