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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1.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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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지역의 풍부한 석유자원이 아니었던들 그런 전화가 벌어졌겠느냐는 관점에선 일종의 자원전쟁이었다. 전쟁 직전 한창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을 때 미국 일각에서는 40만 이상의 미군이 사우디 사막에서 전투준비를 하는 동안 석유수요의 70%를 중동에 의존하는 일본인들은 미국에서 핫도그를 팔고 있다고 빈정대는 소리도 나왔다. ▼1891년 봄,15세 소년 압둘·아지즈·이븐·사우드는 그의 가문이 리야드 지역을 지배하다가 라이벌 라시드 가문의 공격을 받고 쫓겨 나게돼 낙타 등의 가죽끈에 매달려 사막을 헤매던 중 쿠웨이트지배자 셰이크·무바라크·알·사바에게 구조됐다. 훗날 그는 사우디의 왕이 되었고 사막을 방황한 지 꼭 백년 만인 올해 초 이번엔 사우드 왕가가 후세인에 의해 쫓겨난 사바가를 돌보아 쿠웨이트로 복귀하도록 도와줬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보는 것 같다. ▼걸프전쟁의 도발자라고 할 수 있는 후세인 자신이 실상 그런 전쟁이 지니는 의미를 몰랐던 것 같다. 이란­이라크간 전쟁에 대해서 첫째 중동에서 군사적으로 너무 강해보이는 두 나라가 피차 전쟁으로 함께 무력하게 되기를 인근 국가들이 바라는 분위기가 있었고 둘째 양국의 석유양산으로 인해 국제 석유시세가 폭락되는 것을 다른 산유국들이 우려했다는 점 등이다. ▼러시아의 바쿠유전 등 여러곳의 채유권을 가지고 있던 영국,프랑스 등은 산유국 유화를 전제로 한 볼셰비키혁명에 대해 1917년부터 자국의 투자보호를 위해 반볼셰비키 백러시아군을 적극 지원한 일이 있다. 자원확보를 국가존속과 결부한 서구의 사고와 그에 따른 전쟁불사의 결의가 실천된 사실을 후세인이 진작 알았더라면 자원부국 쿠웨이트를 섣불리 강점하는 무모함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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