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부 개편안 부동산규제는 「50대」 유지/금발심선 “특정재벌에 특혜” 지적정부는 재벌그룹들의 업종전문화를 강력히 추진해 나가기 위해 현행 여신관리제도를 대폭적으로 개편,각 재벌그룹들이 자체적으로 선정하는 2∼3개의 주력업종 기업들은 여신관리대상에서 제외,여신한도 규제의 제약을 받지 않고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주기로 했다.
6일 재무부가 마련,금융산업발전심의회에 제출한 여신관리제도 개편방안에 따르면 그 동안 30대 재벌그룹을 대상으로 시행해 오던 여신한도관리를 10대 재벌로 축소하고 선정기준도 종전의 총자산 기준에서 은행대출금 기준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나 부동산·기업투자 규제는 기업의 부동산과다보유와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그대로 유지,대출금 순위 50대 그룹을 관리키로 했다.
또한 대기업의 주식분산을 촉진키 위해 계열주(계열사,친인척 포함)의 보유지분이 일정비율 이하인 계열사에 대해서는 기업규모에 관계없이 여신한도관리,부동산·투자 규제대상에서 일체 제외시키기로 했다.
재벌그룹의 주력업체 선정시 건설업 서비스업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비주력업체에 대해선 대출금잔액의 동결 등 여신관리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열린 금융산업발전심의회의 참가위원 대부분은 이 같은 내용의 정부안이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조업의 독과점을 심화시켜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을 뿐더러 특정재벌에 엄청난 특혜를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기업체질개혁」 시험대/업종전문화·주식분산 성공에 달려/“경제력 집중 방지 포기” 비난도 감수
윤곽을 드러낸 정부의 여신관리제도 개편방안은 기존제도의 완화라는 측면과 아울러 국내 재벌그룹을 환골탈태시키기 위한 야심에 찬 시도가 혼재돼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신한도관리대상을 종전의 30대 재벌에서 10대 재벌로 축소하겠다는 것은 누가봐도 여신관리제도의 명백한 완화임이 틀림없다. 지금까지는 30대 재벌에 끼이면 은행대출금을 마음대로 끌어들일 수가 없었으나 앞으로는 10대 재벌만 아니라면 어느 재벌이나 그러한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롭게 돈을 빌려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은행돈을 기업에 몰아주기 위해 여신관리를 완화한다는 비판은 불을 보듯 빤히 예상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편방안을 마련하게 된 것은 기존의 제도가 지나치게 「경제력집중 방지」라는 명분에만 매달려 국제화시대를 맞아 「기업체질개혁」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를 방치하는 부작용이 있었다는 지적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계 인사나 경영일선의 전문경영인들은 정부가 그저 대재벌에 돈을 안주려고만 애를 썼지 자금조달이라는 수단을 활용,구태의연한 기업경영과 전근대적인 소유형태를 개선시킬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많이 해왔다.
정부는 바로 이러한 지적이 한국경제의 미래와 관련해 타당성이 있다고 수용,개편방안에서 구체적인 시도를 시작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업종전문화와 주식소유분산 유도는 기업의 구각을 깨기 위한 두 가지 골간을 이루는 셈이다.
업종전문화의 경우 재벌별로 2∼3개의 주력업체를 선정케 하는 방안이 마련돼 있다. 주력업체는 아무 업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주력업종의 매출액이 전체의 50% 이상인 계열사여야 하며 제조업을 중심으로 선정된다.
일단 주력업체로 선정되면 여신한도관리 대상에서 제외될 뿐만 아니라 부동산·기업투자 규제에서도 자구노력의무가 완화되는 등 우대되기 때문에 대규모 자금조달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지금까지 같은 업종에서 호각지세를 보인 경쟁사라고 하더라도 한쪽이 주력업체로 선정되고 다른 쪽이 비주력업체로 남게 되면 승부는 뻔하게 된다. 예컨대 현실성은 전혀 없는 얘기지만 금성사와 삼성전자 중 한쪽은 소속그룹의 주력업체로 선정되고 다른 쪽은 그렇지 못하다면 승부는 이미 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재벌들은 벌써부터 주력업체 선정문제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준비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주식소유의 분산우대도 마찬가지다.
국내재벌의 지나친 소유집중이 합리적 기업발전에 커다란 장애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 이를 극복키 위해 엄밀한 조사를 거쳐 소유주의 전체주식지분이 일정수준(예컨대 5% 혹은 10%) 이하일 경우에는 여신관리에서 배제시켜 자유롭게 성장하도록 도와주겠다는 얘기다. 이 경우도 주식분산이 이뤄져 여신관리를 안 받는 기업과 주식소유집중으로 여신관리를 받아야 하는 기업간에는 경쟁력차가 뚜렷이 나타나게 된다.
문제는 재벌그룹당 주력업체의 숫자와 주식소유분산기준지분율 수준이다. 느슨하게 주력업체가 3개가 되고 기준지분율이 10% 등이 돼 버리면 그야말로 여신관리만 완화되는 것일 뿐 별다른 효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래도 기존의 여신관리 내용 중 부동산·신규기업투자 규제는 그대로 유지시키기로 함으로써 재벌의 부동산 과다보유와 문어발식 기업확장에 대한 억제의지는 여전함을 보였다. 10대 재벌을 제외한 나머지 재벌들에게 돈줄은 터주되 그 돈이 부동산이나 방만한 경영으로 쓸데없이 흩어지는 걸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별도의 규제 없이 조달될 수 있는 돈이 오로지 기술개발이나 신제품개발에만 집중적으로 쓰이도록 하자는 것.
결국 재벌에 대한 여신관리의 완화라는 일반적 비판은 정부가 한국경제의 한계로 지적되는 재벌의 문어발 경영과 소유집중을 업종전문화와 주식분산 우대조치 등으로 어느 정도 타개해 내느냐의 여부에 따라 평가가 크게 엇갈릴 전망이다.
따라서 이번 개편방안은 단순한 여신관리 완화방안이라기보다는 5·8부동산대책이 나오게 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취해지는 근원적인 산업구조 조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홍선근 기자>홍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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