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영웅」… 살아서 「잔학자로 격하」 바라/신속대응 못할 땐 아랍서방 관계냉각 우려도/반후세인 세력 확장계기 내부 축출 주시할듯미국은 걸프전 후 사담·후세인 권력의 불확실성 때문에 걸프전 전후처리책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걸프전을 시작할 때 주요 전쟁목표의 하나로 잡은 것은 후세인의 퇴진이었고 또 전쟁승리를 확신하면서 구상한 전후처리책도 후세인 없는 이라크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쿠웨이트 전역에서 4천2백대의 탱크 중 4천대를 잃고 50만 병력 중 3분의2 이상이 전투능력을 잃어버린 후세인이 그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것은 미국엔 여간 불편한 입장이 아니다.
베이커 국무장관은 당초 4일쯤 중동에 갈 예정이었다. 이 계획이 6일로 미뤄졌다가 다시 7일로 확정됐다.
미국 언론에는 온통 후세인 얘기로 가득차 있다.
4일의 백악관 정기브리핑과 국무부 브리핑에서는 미국이 과연 후세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핵심문제로 등장했다. 부시 대통령 자신도 전후처리를 설명하는 지난 1일의 기자회견에서 『이라크의 독재자가 패배의 잿더미에서 다시 불씨를 붙여 침략의 불길을 만들지 못하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주시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었다.
확인된 것은 아니나 후세인 대통령은 알제리 소련 인도 등으로 정치적 망명을 타진했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후세인의 망명을 면죄의 전제로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전쟁범죄를 사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국제법의 문제이지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못박고 있다. 4일의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말린·피츠워터 대변인은 이 문제와 관련,직접 전쟁범죄피해국인 쿠웨이트 등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 문제이지 미국이 먼저 이러쿵 저러쿵 할 입장은 아니라며 사면의사를 간접적으로 부인했다.
미 국무부측은 「후세인 대통령의 신병문제를 포함」한 전후 처리안이 베이커의 중동순방중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후세인 대통령은 아직 바그다드의 권부에 좌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휴전회담에 나온 이라크군 대표,주유엔 이라크 대사 등이 착실히 후세인의 명령을 따르고 있으며,바그다드의 시민들,더러는 요르단,팔레스타인인들까지도 아직 후세인을 전쟁에 승리한 아랍 영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후세인 처리에 있어서 양갈래의 의견으로 갈라져 있다.
첫째는 사담·후세인이 아랍의 영웅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사고」를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는 이미 패전 지도자이므로 머지않아 패전의 책임을 스스로 지든지 아니면 패전의 책임 때문에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지금 만일 어떤 사건으로 희생된다면 「아랍의 영웅」 칭호를 그대로 간직한 채 순교자 반열에 들어설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후세인이 뿌린 아랍 극렬주의·침략주의의 씨앗을 아랍의 어디엔가에 뿌려놓는 결과가 된다.
미국은 후세인이 이라크를 망하게 한 인물일 뿐 아니라 약소국 침략과 잔학행위로 이슬람정신 자체를 모멸시킨 아랍의 반역자라는 이미지가 전 아랍인들에게 인식된 후 권좌에서 밀려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사우디 주둔 미군 사령부도 수만 명의 포로들이 바그다드로 돌아가면 그들의 동료를 죽게 하고 조국의 파괴를 자초한 후세인의 진면목을 이라크인들에게 알리는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둘째로 미국은 걸프전 전후 처리를 빠른 시일내에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시급성을 갖고 있다.
미국은 이번 걸프전을 통해 지난 세대 동안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만 여겨져 오던 서방아랍국의 혈맹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다.
50년대말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에 의해 고취된 아랍민족주의는 아랍세계와 서방세계를 불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국제관계로 변모시켜버렸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집트,시리아,터키 등의 아랍국들을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전 식민지 종주국 내지 그 우방국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총을 들고 같은 아랍형제국인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혈맹분위기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베이커 국무장관이 말하는 소위 아랍이스라엘,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양궤외교(Two Track Diplomacy)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전후처리협상이 질질끌게 되면 결국 전쟁 동안에 얻어진 혈맹감정이 식어져 오랫동안 깔려온 아랍이스라엘 적대감이 다시 표출될지 모르며 그렇게 되면 미국은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중동 평화구축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이라크인에 의한 후세인 정권의 몰락이다.
현재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바스라에는 친후세인,반후세인파의 대립으로 대혼란에 빠져 있으며 아마도 이런 혼란은 석방포로들의 귀국과 함께 수도 바그다드에도 번질 가능성이 짙다.
4일 『반후세인 세력을 미국은 지원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지원요청이 있어봐야 알 것 아니냐』고 피츠워터 대변인은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아마도 미국은 어떤 경로로든 이런 반후세인 세력이 후세인을 재빨리 몰아낼 수 있는 세력으로 확장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중동평화정책의 구체적 토의를 미루고 있는지도 모른다.<워싱턴=정일화 특파원>워싱턴=정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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