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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사건 물건너 갔나(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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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사건 물건너 갔나(사설)

입력
1991.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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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사건은 이제 물건너 가버리는 것인가. 진정 그간의 의혹일랑 말끔히 벗겨져,서둘러 사건을 덮어버려도 아무 뒤탈이 없다는 말인가. 이번 사건의 처리와 수습을 놓고 새삼 이같은 자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여러모로 곤혹스럽다.사실 국민 누구에게나 사건의 시원한 진상과 책임소재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는데,현실은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역연하다. 검찰은 사건연루 구속자 9명에 대해 한때 구속기간마저 남긴 채 앞당겨 일괄 기소키로 했다가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물러섰고,여당측은 한 술 더해 누구 마음대로인지 『수서문제는 이제 끝난 것』이라고 멋대로 선언할 정도에 이르렀다. 일부 야권의 엉거주춤한 동조자세도 초록이 동색인 여야 정치권의 한심한 문제의식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아직도 국민들이 분노를 채 삭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례없는 부정사건의 흐릿한 진상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성역을 남긴 미진한 수사와 전도되다시피 한 책임규명으로도 모자라 걸프지상전이 터진 것에 희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를 기화로 수서파문을 잠재워 보려는 구태의연한 얕은 꾀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걸프지상전이 우리에게 초미의 관심사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수서문제가 하루아침에 잊혀질 것으로 기대하는 정치권과 당국의 안이한 자세나 발상이야말로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쉽게 달아올랐다 갑자기 식어버리는 과거의 국내 정치양상을 「냄비정국」이라고 우리는 불러왔다. 주권자에 대한 투철한 책임완수보다 신속한 국면전환이 유용한 권력유지 수단 중의 하나였던 권위주의 정권시대의 악습을 아직도 우리 정치권은 극복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시대이고 국민들도 그만큼 깨어 있다. 수서를 걸프국면으로 서둘러 유도해본들 그 의혹이 눈 녹듯 사라지기보다는 되레 증폭될 수도 있음을 당국이나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벌써부터 일부 성급한 젊은이들이 연대투쟁을 외치며 거리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재야단체에서는 비리규명위원회를 만들었고 관련자들에 대한 「시민수배」에도 나섰다고 한다. 당국 따로,국민 따로 제각각 달리는 수서사건의 잘못된 수습이 우리 사회에 안겨줄 재앙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 국면전환 목적으로 지자제 정국을 서둘러 본들 혼란이 가셔질 것이며,이지러진 이미지가 다시 살아날 것 같지가 않다.

지금이라도 당국과 정치권은 국면전환과 같은 편법보다는 정공법에 나서는 게 도리이다. 아직 의혹이 덜 풀린 한보 비자금과 정치자금의 향방,청와대 고위층 개입의혹,민자당 수뇌부 관련의혹은 물론이고 언론인에 대한 로비자금 살포에 관해서도 감춤없이 철저한 재수사로 성의를 다할 때 비로소 파문은 가라앉을 수가 있다. 걸프전이 잘 풀려나간다 해서 우리까지 덩달아 뛸 필요는 없다. 당국과 정치권은 더 이상 핑계로 일을 키우지 말고 미진한 일을 진정 서두를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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