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김용순 북한 노동당 서기를 단장으로 하는 북한 방일 대표단 일행을 맞아,문화·예술·체육교류에 서둘러 합의한 데 대해 우리는 불결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갖게 된다.가이후(해부준수)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한국정부와 사전에 협의한다는 것 등 「대북 관계개선 5개 원칙」에 유의해서 추진하겠다고 철석같이 다짐해 놓고 이를 교묘하게 어겼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이 연례적인 방위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한미합동훈련을 빌미로 남북총리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남북대화에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는 차제에 일본이 북한과의 문화·체육교류에 성큼 다가선 것은 남북대화를 둘러싼 남북의 입장을 자국외교에 유리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그 뿐만 아니라 일본정부는 가이후(해부) 일본 총리와 김용순 서기와의 면담주선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뒤에 22일 돌연 집권자민당의 총재자격이라는 구실로 김 국제부장을 만나 일·북한 조기수교 문제까지 거론한 것은 일본의 전형적인 이중외교의 마각을 다시 한 번 드러낸 것이며 이는 일본외교의 신뢰성까지 스스로 부인하는 사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렇듯 한일 양국의 정상끼리 다짐한 약속마저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일본을 과연 우리의 우방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정부는 남홍우 주일공사를 일본 외무성으로 보내 일본측이 북한에 의해 남북고위급회담이 연기된 상태에서 일·북한간의 문화교류 등에 합의한 데 대해 즉각 항의했지만,항의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사실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이중외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65년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룩된 직후의 일본의 대한인식은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서의 위치가 확고했다. 그래서 69년 닉슨사토(좌등) 공동성명에서도 한국의 안전이 일본의 안전에 긴요하다고 내외에 성명했다.
그러나 75년 포드미키(삼목) 공동성명과 77년의 카터·후쿠다(복전)성명에 이르러서는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가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세아의 안전과 평화에 중요하다」고 후퇴했다. 성명서에서 한국의 안전 대신 한반도의 안전이란 포괄적인 개념으로 흐려놓음으로써 일본은 남북한 등거리외교의 근거로 삼게 된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적대관계가 아니라 동반자로 규정한 7·7선언에 입각해서 일본의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반대하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개방화와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대전제 밑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두말 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남북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은 이라크에 스커드미사일의 부품을 수출하는 등 아직도 호전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이런 북한을 부추기면서 고무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남북대화를 방해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것을 똑바로 인식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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