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하오에 있은 김용순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의 기자회견은 대성황이었으나 기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는 못했다.이날 하오 4시30분 동경프레스센터 9층 일본기자 클럽에서 열린 회견에는 일본의 각 언론매체에서 6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노동당 서기급 인사가 일본 여·야당의 초청으로 공식 방일한 것도 처음이며,그만한 인사의 기자회견도 처음이었다.
더구나 당의 절대우위 체제인 북한의 노동당 국제부장은 대외정책의 실무총책이므로 일본언론의 관심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신문사에서는 정치부는 물론 외신부 기자들까지 나와 숨소리 한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런 열기와는 정반대였다. 22일 아침 일본의 신문들은 1,2단 크기로 이 회견을 보도했을 뿐이다. 걸프전쟁 뉴스로 지면이 비좁은 이유도 있었지만 그의 답변에 뉴스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행원들과는 달리 김일성 배지를 달지 않은 김의 당당한 태도와,만면에 미소를 담은 여유 있는 모습을 보고 기자들은 큰 기사가 될 만한 말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기대는 처음부터 빗나갔다. 약속시간보다 12분 늦게 회견장에 도착한 김은 예정시간의 절반인 40분을 「인사말」로 채웠다. 내용은 지금까지 북한인사들이 기회있을 때마다 되풀이해온 것들뿐이었다.
지루할 정도로 장황한 홍보·선전발언 끝에 질문이 시작됐으나 답변 또한 마찬가지였다. 왜 북한에는 언론·사상·내왕의 자유가 없느냐는 첫 질문에 그는 『우리 헌법에는 모든 것이 보장돼 있으니 한 번 와 보라』는 말로 넘어가는 듯 하더니 왕래의 자유에 대해 한바탕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남북의 자유왕래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인데 남쪽이 대전차 장애물이라고 볼 수 없는 콘크리트장벽을 만들어 이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알맹이 없는 회견의 뒷맛을 더욱 씁쓰레하게 한 것은 한 기자의 비상식적인 질문태도였다. 언론의 자유를 물은 이 기자는 끝머리에 북한이 일본에 요구한 전후 45년간의 보상은 절대반대라는 자기주장을 토로했다. 이것이 질문이 아니라고 판단한 때문인지 북한통역자는 이 말을 통역하지 않았다.
이 기자의 질문은 궁금한 것을 묻는 어조가 아니라 『왜 일본에 진 무역채무를 갚지 않느냐』고 사뭇 추궁조였다. 「엄정객관」을 모토로 해야 할 기자가 격앙된 목소리로 따지듯 묻는 말을 들으면서 남의 거울에 비춰진 옛날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