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상부·「공문」 실체규명 미흡/“짜맞추기로 진상축소” 목소리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회오리를 몰아붙인 수서택지 특혜공급사건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10일 만인 16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장병조 전 청와대 비서관 및 국회의원 5명 건설부 국장 1명(2급) 주택조합관계자 1명 등 모두 9명을 구속함으로써 일단 마무리됐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돈과 권력이 어떤 식으로 유착되어 공생해나가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전형적인 비리유형일 뿐만 아니라 청와대 및 평민당의 거액 정치자금수수설 등으로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파문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6공 최대의 정경스캔들」로 불려왔다.
당초 이 사건은 여러 기관이 얽히고 설켜 압력을 행사한 데다 초동단계에서 검찰의 소극적 대응에 따른 증거인멸의 가능성 때문에 혐의포착 및 입증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수사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검찰은 그러나 수사가 장기화하고 사건관련자가 늘어날수록 의혹이 증폭될 우려가 크고 수사결과에 대한 기대치만 높아져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 아래 설날 연휴도 외면하고 수사를 강행한 끝에 단순한 대형 「뇌물비리사건」으로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는 『수서특혜사건은 한보 정 회장과 주택조합관계자들이 공모,국회·건설부·청와대 등 관계기관에 금품을 살포한 전형적인 뇌물사건』이라며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이상 더 이상의 추가소환자나 구속자는 없을 것』이라고 수사종결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찰이 현역의원 5명을 무더기로 구속하는 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6공 최대의 의혹」으로 여론을 들끓게 한 이 사건의 성격이나 중대성에 비추어볼 때 수사결과가 국민들의 의구심과 궁금증을 풀어주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재야법조계에서는 수사결과를 놓고 『검찰이 한보의 로비대상이 됐거나 택지 특혜공급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관련자 중 「희생양」만을 골라 사법처리 함으로써 비등하는 여론을 잠재우고 나머지에는 면죄부를 주는 요식적인 축소수사로 일관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즉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수사에 나선 검찰이 이미 내려진 결론에 따른 「짜맞추기」수사로 일관,숨겨진 비리를 캐내는 데 미흡했다는 것이다.
수서사건은 「국가최고기관의 권력을 등에 업고 관계기관에 압력을 행사한」 특수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과연 누가 어떤 경로를 거쳐 이권에 개입했는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장 전 비서관이 상부의 지원 없이 단독으로 서울시장과 건설부 장관에게 특혜공급의 압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상식적인 판단과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장 전 비서관 이상의 선이 개입됐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 서울시와 건설부에 공문을 보내 수서민원을 전폭 수용토록 부탁한 평민당 고위층에도 정치자금이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이원배 의원(평민)은 한보 정 회장으로부터 4억3천만원을 받아 이 중 2억원은 권노갑 총재당무특보에게 당비로 쓰라고 주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한보측의 뇌물이 당 고위층에게도 건너갔을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홍성철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서울시에 지시공문을 보낸 점(90년 2월) ▲이연택 전 청와대행정수석비서관이 소관부서도 아닌 문교·체육담당의 장 전 비서관에게 수서민원처리를 지시한 점(90년 2월) ▲김종인 경제수석비서관이 국회건설위원장에게 선처를 부탁한 점(90년 12월) ▲평민당이 서울시에 협조공문을 보낸 점(90년 8월) 등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을 경우 외압핵심부분은 여전히 미궁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청와대의 행정업무는 성격상 상부의 지시없이 민원서류를 임의로 발송하거나 비서관이 임의로 외부회의에 참석,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을 모를 리 없는 검찰이 장 전 비서관 이상선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검찰의 진상규명 의지가 없음을 반증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민자당 김운환 의원이 지난 6일 『청와대의 다른 수석비서관이 오용운 위원장에게 협조요청을 했다』고 폭로했다가 몇 시간 만에 번복한 사실도 검찰이 형식적인 조사로 마무리하는 등 처음부터 청와대 상층부는 수사대상에서 제외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검찰은 18일 있을 이번 사건의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홍성철 전 비서실장 등 청와대 고위관계자 3∼4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지만,장 전 비서관이 정 회장과의 친분관계로 2억6천만원의 뇌물을 받고 청와대비서관이라는 신분을 이용,외압을 가한 것으로 이미 결론을 내린만큼 형식적인 조사 후 수사를 종결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사건은 검찰이 정·경·관이 복합적으로 연루된 비리를 무한정 파헤칠 경우 정치권의 파국마저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절충안으로 한보 정 회장의 로비→건설위청원→청와대 장 전 비서관의 외압이라는 도식을 만들어놓고 이 틀에 맞춰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이창민 기자>이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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