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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만 로비했나(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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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만 로비했나(사설)

입력
1991.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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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 의혹」 사건을 일으킨 한보가 감사와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각광을 받게 되는 부분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하나는 주인인 정태수 회장이 로비의 귀재이며 현금로비의 제1인자라는 것,땅을 만지작거리며 거금을 만드는 데 달인이라는 세평이다. 또 하나는 정 회장이 사장이나 주요 임원으로 기용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서울시 고위간부 출신들이라는 사실이다. 건설회사로 입신해서 재벌급으로 성장할 수 있으려면 주인이 평범한 시정인들과는 달라 이재에 비범해야 할 것이고,또 서울을 중심으로 해서 「건설」을 해가려면 자연히 서울시 출신 건설전문가를 스카웃해야 한다는 필요에서 본다면 앞에서 지적한 두 가지는 크게 흉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그러나 「수서 의혹」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한보의 성장이면사를 보면 이것이 건전한 건설회사인지,편법,위법,탈법,범법을 동원하는 로비를 앞세워 일확천금을 노리는 건설업형 투기회사인지가 쉽게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실제로 한보는 다른 기업이 손에 넣기 어려운 금싸라기 「녹지」만 확보해 아파트단지를 조성함으로써 땅 짚고 헤엄치기로 떼돈을 번 재계의 신데렐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국민은 한보와 같은 성격의 건설업체가 아직도 「수서지구」같은 마지막 녹지지대를 건드릴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 나라의 정경관 유착에 대해 분노하고 있고,검찰이 그 유착관계의 흑막을 캐내기 위해 정밀수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보만이 로비를 하는 건설업체인지,다른 건설업체들은 이미 그 단계를 졸업했다는 것인지,재계의 다른 업체들의 로비실태는 어떠한 수준인지를 재계에 묻고 싶다. 「수서 의혹」이 터진 뒤 「한보가 끝까지 녹지에 매달리더니 일을 결국 그르치게 됐다」는 얘기가 건설업계에 나돌았다고 한다.

그 소문으로 미루어 건설업계도 업계 분위기가 전보다 많이 개선된 것 같은 이상을 받게 한다. 하지만 한보에게 돌을 던질 사람이 있겠는가. 오늘날 내로라하는 건설업자치고 아파트나 땅으로 사세 신장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크고 작은 로비를 해오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은 아마도 상식에 속할 것이다. 건설부나 서울시의 고위 건설관계 공무원 출신은 오래전부터 건설업계의 임원 영입 영순위였고,로비이스트로 활약해온 것이 관례였다.

도시개발,택지개발,용도지구 지정 및 해제,교량과 도로 등 건설에 관한 기밀을 빼내면 그것이 곧 돈벌이로 연결돼왔던만큼 관계공무원의 확보는 이권의 보장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관계공무원들은 관계기관이나 정치권을 상대로 하는 로비의 매개역에도 적역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난 시절 이 나라의 건설업은 바로 로비력이 사업능력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수서 분양 때도 재벌계열 건설업체 등 1백17개 업체들이 이를 성사시켜 공영택지개발지 택지를 독점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기기 위해 공동로비를 폈다는 보도가 나왔을 정도다.

건설업계의 자정은 결국 업체 스스로가 얼마나 로비를 건전화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하겠다. 합법적인 절차와 접근에 의해 자사 이익을 확보할 권리가 있는만큼 로비의 존립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비자금의 사용,즉 뇌물을 주고 정보나 특혜를 사는 부패로 이어진다는 데 있는 것이다. 로비와 비자금의 관계는 재계 모두의 공동관심사가 될 것이다. 「수서 의혹」 사건이 업계의 건전치 못한 로비구조를 파악,정리하는 맹성의 계기가 돼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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