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전용 적발… 부도사태 고비/은행선 “대여금 불과” 이의… 기업존속 입장수서 특혜공급의 초점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보 정태수 회장과 관련공무원들이 구속되느냐 여부보다 기업으로서 한보그룹이 살아남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다.
그리고 그 결정은 당연히 돈문제로 귀결된다. 돈이 충분히 많아 이번 사태로 인해 몰려드는 자금결제 요청을 다 수용할 수 있으며 살아남는 것이고 돈이 없어 부도를 내면 죽는 것이다.
먼저 빚의 규모를 보면 11일 현재 확인된 수치로 한보그룹의 총여신 규모는 6천8백79억원 이상으로 갈수록 많은 쪽으로 확인되고 있다.
총여신 중 은행대출금은 이미 확인됐던 대로 지난해말 현재 1천2백36억원이고 지급보증은 2천6백10억원으로 은행 총여신은 2천8백46억원.
단자사의 단기대출금은 1천1백78억원으로 확인됐으며 보험사들도 대출금이 2백4억원,지급보증액이 7백70억원으로 모두 9백74억원의 여신을 한보에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한보가 발생했다가 아직 만기가 안 돼 상환치 않은 회사채 미상환금이 8백70억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채의 상환 만기일은 모두 92년 7월 이후이므로 당장 문제될 건 없는 상태.
일반적으로 대형 금융사고의 첫 실마리가 되는 사채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사채시장의 특성상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노릇이지만 이번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1주일 가량이 지났는데도 아직 결제를 요구하는 사채어음이 나타나지 않는 걸로 보아서 일단 군소사채업자와의 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한보의 정 회장은 사채시장의 큰손들과 적지 않은 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수의 큰손들과 개인적 면식을 토대로 거래를 해와 거래선들이 결제를 위해 은행 등으로 돌리지는 않고 있을 것이란 게 금융계의 추정이다.
이처럼 한보의 총여신액은 외형상 6천8백79억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단자사 대출과 회사채 미상환금 등 2천48억원은 은행·보험의 지급보증과 중복되므로 한보가 실제 갚아야 하는 순여신액은 4천8백억원 가량이라고 할 수 있다.
한보가 현재 4천8백여 억 원의 순부채를 감당할 자금력이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번 사건이 터지기 이전에도 그만한 빚을 안고 회사가 굴러갔으므로 아무런 외부 충격이 없었더라면 제대로 굴러가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계에선 지난 10일의 감사원 발표가 이미 한보가 기업으로서 존속할 수 있느냐 여부를 결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기업을 살리라고 은행이 대출해준 5백81억원 중에서 4백18억원을 빼돌려 땅을 사재고 문제의 수서땅을 26개 직장주택조합에 팔면서 세무서엔 매입가격과 똑같은 평당 57만원에 매각한 것으로 신고,특별부가세(양도세)를 전혀 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평당 1백48만원에 팔아 4백27억원의 차익을 챙겨 1백28억원의 세금을 탈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탈세와 금융자금 유용이 적발될 경우 해당기업이 정상적으로 운용돼 나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 기업신용의 실추에 따른 자금경색과 어음의 일시 쇄도는 물론이고 기왕의 빚 4천8백여 억 원에다가 수서 백지화에 따른 위약금 1천억원,추징세금 1백28억원 등 모두 6천억원을 감당해야 하게 되니까 한보의 자금형편으로는 지탱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도 부도를 최대한 버텨보기는 하되 제3자 인수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제3자 인수여부를 당장 결정해야 할 시점은 아니며 그런 측면에서 감사원의 발표는 다소 성급했으며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흥,서울신탁,상업 등 3개 은행이 대출해준 구제금융 5백81억원 중 한보상사를 통해 정 회장에게 흘러들어갔다는 4백18억원은 실제 한보상사가 87년말 현재 한보 계열사로부터 빌려다 쓰고 있는 대여금 규모라고 은행들은 밝히고 있다. 이 대여금은 86년말 현재로는 6백41억원이었고 따라서 1년간 2백23억원이 오히려 줄었으므로 구제금융이 이곳으로 흘러들어갔다고는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해당은행들은 또 당시 대출해주면서 돈이 쓰인 용도를 기록해둔 서류를 제시하며 구제금융 전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은행들의 이의 제기는 정 회장 등 한보의 경영층은 사법적·정치적으로 처리되더라도 기업으로서의 한보는 되도록이면 경제논리에 의해 처리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실적으로 기업주와 기업이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은 게 사실이고 한계지만 기업주의 처리에 따라 기업까지도 고스란히 해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홍선근 기자>홍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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