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만 2백59억… 회수땐 부도/영업적자·환금성 약한 사재기땅 여력없어한보의 빚이 당초의 잠정집계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한보가 이번 사태를 금융 파국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새로 더 확인된 빚은 상환기일이 짧은 단자사의 어음할인대출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건이 터진 직후 한보의 단자사 대출금은 5백억원 선을 밑도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이 보다도 2배가 훨씬 넘는 1천1백78억원으로 드러난 것.
은행의 지급보증을 첨부해 어음을 할인하는 형식으로 갖다쓰는 이 대출금은 은행의 통상대출기간이 1년가량인 것과는 달리 30일 전후가 지나면 갚아야 하는 단기대출이다. 따라서 은행대출금에 비해서는 훨씬 높은 강도로 매일매일 한보의 자금주머니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당국의 수사가 확대돼 정태수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마저 자리를 비우게 되면 1천억원이 넘는 자금을 한 달 안팎의 기간 동안 다른 데서 꿔다 메우거나 혹은 기간을 연장하는 일이 더욱 어렵게 될 게 분명하다.
제2금융권이 은행의 지급보증없이 한보에 빌려준 돈도 2백59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도 문제다.
은행의 지급보증이 첨부돼 있으면 그나마 한보에서 돈을 못 받더라도 은행으로부터 대신 받을 수가 있으므로 단자사들이 대출금 회수여부를 크게 우려하지 않아 조기회수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은행보증 없는 신용취급분은 한보에서 못 받게 되면 그것으로 떼이고 마는 것이므로 서둘러 돈을 회수하려들 수밖에 없어 한보의 취약한 자금력을 크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대출금보다는 제2금융권의 대출금이 단기적으로 더 큰 문제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2백59억원의 신용대출금 회수여부가 핵심적인 관건. 이것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 우려돼온 부도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단자사들은 은행의 지급보증이 된 대출금에 대해서는 정상적으로 기간연장을 해주고 있다. 지난 4일 한성투금이 만기도래된 대출금 22억4천만원을 8일로 미뤘었고 경남투금과 동해투금도 만기도래된 대출금 19억5천만원과 25억4천7백만원을 각각 12일과 13일까지로 상환기한을 연장했다.
또 8일엔 한성투금이 22억4천만원의 상환기한을 11일로 재연장했으며 동해투금은 27억원을 아예 4월10일까지로 기한연장하기도 했다.
사태의 추이로 보아 아직은 무조건적인 회수에 나설 국면은 아니라는 판단을 단자사들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보의 재무구조가 워낙 취약한데다 전체 부채규모가 예상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가뜩이나 불안한 한보의 자금사정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한보측은 부동산전문 재벌답게 보유하고 있는 땅이 많은만큼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땅이 필요한 때 금방 돈으로 바꿀 수 있는 환금성이 약하기 때문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땅이 많아 나중에 많은 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해도 당장 하루하루를 버티지 못하면 흑자도산을 할 수밖에 없다.
한보의 계열사 재무상태나 영업실적을 보면 영업수익금으로 단시일내에 1천억원 전부는 차치하고라도 수백억 원 가량도 메울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보그룹의 모기업인 한보주택은 88년에 74억원의 적자,89년에 1백58억원의 적자를 각각 기록하는 등 자금이 나오기는커녕 더 들어가야 할 처지고 한보탄광 역시 88년 22억원 적자,89년 42억원 적자 등으로 마찬가지 사정이다. 비교적 재무구조가 괜찮은 편인 한보철강도 88년엔 2백2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가 89년 철강업종의 호황을 타고 겨우 9억원의 흑자를 냈다. 그러나 한보철강은 지난해 12월부터 아산만에 무려 1조1천억원 규모의 철강단지 조성작업에 착수,엄청난 자금을 필요로 하고 있는 기업이다.
한보는 단자사로부터 은행의 지급보증을 들이밀고 철강부문에 투자할 소요자금이라며 얻어낸 돈 30억원으로 수서지구 근처의 땅을 매입한 것으로 감사원 특감 결과 드러났듯이 「은행빚 얻어 땅사재기」에 나서는 전형적인 투기재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회사의 영업수익에서 나온 자금으로 회사를 운영한 게 아니라 은행대출금,단자사 등 제2금융권 대출금,회사채발행 조성금 등 빚으로 회사를 운영해왔고 그 돈으로 기회가 닿기만 하면 부동산까지 샀으니 지금같은 상황에서 자체 자금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로비자금이 다소 비축돼 있었다해도 1천억원 수준까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새로 드러난 엄청난 빚규모에 경제계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홍선근 기자>홍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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